[강유정의 영화세상] 클로저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지독한 영화라고 표현했다. 감정의 밑바닥까지, 사랑이라는 관계의 끝장을 보는 그 집요함에, 보면서도 넌더리가 나더라고 말이다. 네 명의 연인이 등장한다. 불행히도 이들은 두 커플이 아니다. 네 명은 경우의 수가 되어 서로가 서로의 곁을 맴돈다. 둘이 하나를 사랑하기도 하고 하나가 둘을 배신하기도 한다. 원래는 두 커플이었던 이들은 복잡한 경우의 수만큼의 상처와 대면하게 된다. 그들은 바로 '클로저'(Closer)의 연인들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두 남녀가 수많은 인파 속에 서로를 마주보고 걸어온다. 이제는 여러 영화에 오마쥬될만큼 유명한 장면이 될 이 장면은, 만남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암시한다.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 한 사람만 조명을 받은 듯 주변이 어두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거나 당신이 너무 커 보여서 당신 밖에 보이지 않더라는 오래된 사랑의 찬사들 말이다.

돌이켜보면, 맞다. 사랑에 빠지면 주변은 흐려지고 근시안이 되고 만다. 돋보기를 끼고 글자를 들여다보듯 단지 그 사람만 보일 뿐이다. 세상은 달라지고 달라진 세상은 사랑에 빠진 그 사람을 다른 곳으로 이동케 한다. 데미언 라이스의 '블로어스 도터'(Blower's Daughter)라는 음악 속에서 간절하게 반복되는 가사, "나는 너에게 눈을 뗄 수 없어."는 그런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음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소설가를 꿈꾸던 댄(주드 로)은 인파 속에서 보석같은 그녀 앨리스(나탈리 포트만)와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만남, 사랑, 동거과정을 소설로 써서 작가로 데뷔하게 된 댄은 책 표지 사진을 찍던 중 다른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진작가 안나와 또 다른 사랑에 빠지게 된 댄. 이 만남은 앨리스와 안나의 남편인 래리(클라이브 오웬)을 혼돈에 빠뜨린다.

앨리스가 댄을 처음 만났을 때 "안녕, 낯선사람"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낯선 사람, 사랑이란 낯선 사람을 만나 낯익은 사람이 되어 끝맺는 무엇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낯섦이란 모험이자 여정과도 같다. 낯설어서 더 매력적이지만 그 서먹서먹한 낯섦이 익숙해질 때 권태와 피로는 찾아든다. 끝없이 낯섦을 찾아나서는 댄과 그것은 한 순간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앨리스.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던 관계의 본질을 자꾸 건드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지독하다. 스트립댄서가 된 앨리스가 래리 앞에서 "나는 앨리스가 아니에요."라고 거짓 이름을 고백할 때, 래리가 안나에게 당신은 그 사람과 섹스를 했느냐고 추궁할 때, 사랑 위에 걸쳐 있던 핑크빛 외장은 찢겨 나가고 만다. 그 질문과 대답 속에는 타자에 의해 상처받은 두 영혼만이 있을 뿐이다. "모두가 거짓말이야. 사진은 슬픈 순간을 너무 아름답게 찍지. 그 안의 사람들은 너무 슬프고 괴로운데도. 그리고 예술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겠지…." 가까워질수록 지독해지는 만남, 클로저, 그래서 이 영화는 그 수많은 사랑 영화 중에서도 오롯하다.

강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