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정수자
마음이 시끄럽게 뾰족뾰족 돋는 날은
손톱을 세워 본다 세상을 다 후빌 듯
은밀히 자란 욕망들 붉게붉게 키워본다
파르르 날 선 순간, 웃으며 구겨넣은
적의가 지금 모두 손톱 밑에 웅크렸다
비로소 때를 만난 듯 단단히 반짝인다
하지만 너무 많은 질긴 벽들 앞에
피가 고인 듯 손끝만 무거운 날
세상을 돌아앉아서
나를 오래 자른다
'손톱'이나 '눈썹'이란 말을 만나면 未堂(미당) 시인이 퍼뜩 떠오릅니다. 생전에 참 무던히도 어여삐 여긴 말들이니까요. 그러나 예서 보는 '손톱'의 느낌은 전혀 다릅니다. '은밀히 자란 욕망'의 기미를 읽은 탓인가요? '세상을 다 후빌 듯' 붉게 세운 손톱 밑에 파랗게 날 선 적의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마음이 시끄럽게 뾰족뾰족 돋는' 도입부는 무언가 소란스럽고 스산한 내면의 움직임입니다. 기회를 엿보며 도사린 끝에 '비로소 때를 만난 듯' 대질러 보지만, 거대사회의 벽들은 너무 많고 질기지요. '피가 고인 듯 손끝만' 다칠 뿐, 세상은 요지부동입니다.
'세상을 돌아앉아서/나를 오래 자른다'는 마지막 구절에 언뜻 체념의 그림자가 스쳐갑니다. 개인의 욕망은 무기력하게 꺾이는 듯하나, 우리가 정작 주목할 바는 마음이 시끄러운 날이면 언제든 다시 날을 세울 그 손톱입니다. 손톱의 날을 세우고 자르는 동안 시인은 줄곧 스스로의 마음 속을 응시하고 있었을 터.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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