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우리 아이를 '한 자리' 시켜야 하는 이유

제가 사는 아파트 뒤편 작은 야산 어귀에는 주민들이 쉬는 휴식공간이 있습니다. 몇개의 나무 의자와 퍼걸러가 있어 요즘처럼 더운 날 저녁시간이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그곳에서 몇 분을 만났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연히 그곳에 있다가 나누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먼저, 두 분은 60대 후반에서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였습니다. 다른 의자에 각각 앉은 것으로 보아 서로 아는 분 같지는 않고 잠시 의자에 앉은 김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이 나눈 이야기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이들은 존칭이나 직책 등을 붙이지 않고 이름 그대로 불렀지만 지면에서는 예의를 갖춰야 할 것 같아 조금 고치겠습니다.)

한 할아버지는 최근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당대표에게 퍼부어진 막말이 못내 분한 것 같았습니다. '시집도 안 간 사람에게 무슨 아이냐. 말도 안 되는 것을 지껄이고 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할아버지는 40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직도 박 대통령을 들먹이나.'라며 '아무리 정치라지만 너무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받은 할머니는 "대통령 선거고 뭐고 일 잘할 만한 사람 아무나 뽑고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며 아예 화젯거리로 삼기 싫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곳에서 10m 정도 떨어진 벤치에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청년 두 사람이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두 분의 목소리가 컸던 탓인지 설핏 잠에서 깨 누운 채로 두어 마디 대화를 했습니다. 한 젊은이가 "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 딸이냐?"(물론 이 청년들도 이름만 불렀습니다. 즉 'XXX가 XXX 딸이냐?'라고 했습니다.)라고 하니 다른 청년은 아주 웃긴다는 듯이 "니는 그것도 모르나, 잠이나 자라."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과 무관심이 극도로 엇갈리는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또 선거철이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중간 과정이나 결말이 뻔하게 보여 크게 기대할 것도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늘 정책대결이니, 비전 제시니 하면서도 종내 막가파식 폭로전으로 치달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 뒤집기를 '조자룡 헌 칼 쓰듯' 하고, 같은 당 주자끼리 못 잡아 먹어 안달이고, 당을 쪼개가며 서로 비난하는 것을 봅니다. 시정잡배라도 차마 하지 못할 폭언이나 부모형제는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들먹이며 상대방의 부도덕성을 들춰내는 것도 봅니다. 하긴 비단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마다 늘 보는 낯익은 풍경이어서 더 씁쓸하겠지요. 또 이런 모습은 누군가 '자리'에 앉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듯 줄을 서거나 아니면 '5년 뒤'를 외치며 끝까지 발목을 잡거나 하는 것으로 매듭되는 것 아닌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가당찮은 바람을 하나 생각해냈습니다. 거국적으로 '우리 아이 대통령 만들기' 캠페인을 전개하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까지는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고위직 인사로 키울 꿈을 갖는 것도 괜찮겠지요. 자식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 부모란 것을 생각해보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또 어린아이나 학생, 청년들에 대한 바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되면 꼭 '한자리'하는 사람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달라는 것입니다.

한자리를 하려면 후보경선이나 청문회 등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것이고, 요즘 분위기를 보면 평생을 청렴하거나 정의롭게 살지 않으면 다른 후보들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 부모님들은 '한자리'를 할 자식에게 흠이 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깨끗한 삶을 살 것입니다. 이를 넘어 아는 친척을 다 찾아가 땅투기나 위장전입, 숨겨둔 자식, 불투명한 재산 같은 것이 없도록 간곡히 호소할 것입니다. 또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라면 절대로 부동산 투기, 뇌물수수 등 쓰레기같은 범죄에 가담하지는 않겠지요.

한낱 '여름밤의 꿈'같은 망상일까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정지화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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