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최하림 作 '내 시는 詩의 그림자뿐이네'

내 시는 詩의 그림자뿐이네

최하림

詩와 밤새 그 짓을 하고

지쳐서 허적허적 걸어나가는

새벽이 마냥 없는 나라로 가서

생각해보자 생각해보자

무슨 힘이 잉잉거리는 벌떼처럼

아침 꽃들을 찬란하게 하고

무엇이 꽃의 문을 활짝 열어제치는지

어째서 얼굴 붉은 길을 걸어

말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고

말도 지나고 풍경도 지나서

어떤 나무 아래 서 있는지

맞아, 시란 질문이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지. 모든 질문 속에는 대답이 미리 준비되어 있지. 갓 태어난 계집아이 몸이 제 어머니, 제 외할머니를 담고 있듯이, 세상 모든 질문 속에는 잉잉거리는 벌떼처럼 시가 숨쉬고 있지. 생각해보자 생각해보자, 새벽이 마냥 없는 나라로 가서 고요가 다스리는 나무 아래 서 있어 보자. 없는 듯 있는 그 리듬 아래. 말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고, 말도 지나고 풍경도 지난 지점에 있는 시를 찾아. 무슨 힘, 무엇이 꽃의 문을 활짝 열어제치고 찬란하게 만드는지. 어째서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밤새 詩(시)와 그 짓을 하는지. 그런데 이 강렬한 에너지의 언어에서 얼핏얼핏 감지되는 그림자는 누구?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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