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도향(62)을 만났다. 누런 턱수염은 분위기를 더하고 머리에는 눌러쓴 하얀 베레모가 잘 어울린다 싶다. 편안한 잠바로 윗옷을 마감했지만 흐트러짐이 없이 보인다. 그 상태로 서로 침묵이 흐르자 가늘게 실눈을 뜨고는 말을 건냈다.
"데뷔 25년 만에 후배들과 함께 작업한 2집 앨범을 얼마 전 세상에 내 놓았어. 대중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 중이지."라고 했다. 오랜만에 내놓은 음반은 DJ DOC의 김창렬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지금까지 40년의 세월. 그는 자신의 노래보다 CM송으로 대중들에게 더 친근하다. TV를 시청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가 만든 광고와 세월을 같이 보낸 셈이 된다.
'엄마오실 때 아빠 오실 때~줄줄이 사탕', '아카시아껌', '삼립호빵', '이상하게 생겼네~스큐르바'와 전 LG 그룹에서 CM송으로 보급했던 '사랑해요 LG~' 까지 3천곡이 넘는 CM송 노랫말을 직접 제작했다.
"방송되지 않은 CM송을 까지 합하면 1만 여 곡이 넘어. 아무튼 제작자로 바쁘게 살았는데 어느 날, '바보처럼 살았군요.'의 노랫말처럼 내가 너무 바보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 자신의 정신세계에 깊이 빠지다 보니까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 그래서 보고 내 자신을 정화하는 명상과 수련을 하고 깨우침을 얻으면서 살았어."라고 했다.
사실 그는 이때부터 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시피 하면서 세상과 멀리한 채 살았다. 정신세계에 관한 책을 2년 동안 무려 1만 권 이상 읽고 '노자사상'에 푹 빠져 살았다고 했다. 그러한 깨달음을 명상과 수련을 통해 얻어서일까. 1992년엔 '태교명상음악'을 들고 명상음악가로 변신해 대중 앞에 나타나 놀라게 만들더니 2002년도에는 '항문을 조입시다.'라며 방송에 등장해 대중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그였다.
"명상음악도 하나의 대중음악이야. 듣으면서 마음속 깊이 걸쳐있는 상처 덩어리가 치유되고, 가수 자신 역시 노래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가수로서 본분을 다 한거지." 이렇게 말을 옮겨놓는 그의 소리 속도에는 절대 서두름이란 없어 보였다.
명상음악에 푹 빠져 살던 그가 다시 대중 앞에 서게 된 사연 얘기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어느 날 음악 평론가 임백천 씨한테 전화가 왔어. 제주도에서 벽지촌 노래봉사를 하는데 와 달라는 거야. 마이크 놓고 산지도 오래됐지만 거절할 수 없어서 갔지. 그런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려는데 어느 할머니가 갑자기 '김도향이다!' 하고 소리를 치시는 거야. 노래를 다하고 나서도 박수소리가 안들려서, 속으로 '가수로는 이젠 한물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야. 알고 봤더니 그 할머니가 3년 동안 말을 잊고 사시던 분인데 날 보고 말문이 트였다고 하더라고. 그때부터 노래의 역할이 나한테는 깨달음으로 오게 됐어."
그 후 김도향은 노래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은 고민을 하고 나서 마음과 정신까지 움직여 실천할 수 있는 음악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조만간에 웨이컵닷컴 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인터넷 질병치료 명상센타를 만들려고 해.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거든.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정신을 정화하고 질병들이 나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명곡은 마음까지 치유하잖아."한다.
그가 풀어놓는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면서 무겁지도 그렇다고 해서 가볍지도 않은 그의 경계를 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수행으로 얻어진 깨달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대경대학교 연예매니지먼트과 교수
작성일: 2006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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