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8일 중국 땅을 밟다. 무지 맑은 날씨가 환영인파를 대신한다. 나이 37세, 세속인이라면 일가를 이루어 가계를 꾸려야 할 시기, 할 바 팽개치고 이 무슨 해괴망측함인가! 미화하자면 예수의 방황과 석가의 출가와 같은 이유 일게고, 변명하자면 지칠 줄 모르는 도전, 더 알고 싶은 욕망 일게고, 비하하자면 현실도피다.
하직인사, 떠나오는 가슴 가득 눈물이 흘러 엎디어 절 올린 후 부모님 존안을 올려보지 못하겠더라. 자식 키워 공양을 바라지는 않으시겠지만 자식 된 도리로 반포지효(反哺之孝)를 행하지 못함은 금수만도 못한 것이라. 무어라 변명할 수 있겠는가. 죄 깊이 파고들어 심장을 쥐어뜯는데 가쁜 숨 들킬까 염려되고, 내 눈물 비쳐 당신 가슴에 비수되어 꽂힐까 저어하여 감히 눈물짓지 못하겠더라.
이 보다 더 아픈 슬픔을 겪어보지 못했다. 지난 시절 3년 동안 군대에도 갔다 왔고, 중학교졸업하고 혈혈단신 대구 땅에 유학했을 때도 마냥 씩씩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번의 짧은 떠남은 왜 이리 아픈 것일까?
촌각을 쪼개가며 산 덕분에 배울 것 다 배워 박사라는 허울도 썼다. 이제 충분하다고 애써 위로하지만 나의 위로가 당신의 슬픔을 줄일 수는 없다. 이미 죄인 된 몸, 행적이라도 남겨 후인들의 가는 길에 보탬이 되는 것이 송구함을 더는 유일한 길임은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숙명처럼 다가온 중국, 할 일은 하나이다. "설마"를 현실로 만든 중국에서 우리네 살길을 찾아야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꿀물이 한반도로 흐르게 골 깊은 도랑을 파야한다. 외줄타기의 옹고집에서 벗어나 우리도 그네를 만들어야 한다. 중국과 미국을 동아줄 삼아, 일본과 러시아를 발판 삼아, 남북한 손잡고 창공높이 오르는 그네를 매어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베이징의 첫날 밤, 적진의 찬 공기로 허파꽈리 구석구석을 씻는다. 긴장조차 달콤하다. 묘한 설렘이 가슴에서 사지로 그리고 모공으로 퍼진다. 살 떨림, 짜릿한 전율이 전신을 일주하여 동공을 강타한다. 번쩍 정신이 든다. 무심히 보고 있는 기숙사의 새하얀 벽, 감정을 갈무리하고 현실을 직시하자. 힘내라 이정태!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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