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창포에서 부여로 가는 길에 우금치 기념탑이 있어 버스를 세우고 아이들과 함께 묵념을 올렸다. 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서쪽은 우리 역사에서 소외받은 지역이다. 그 아픔의 본질에 금강과 무등산이 존재한다는 말에도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우금치 기념탑에도 여전히 그런 아픔이 존재하고 그 아픔이 비가 되어 내린다. 우금치와 금강이 안고 있는 아픔을 노래한 민족대서사시의 작가 신동엽을 만나기 위해 부여로 간다.
먼저 부소산성에 올랐다. 제법 먼 길을 걸어 낙화암과 고란사에 이르렀다. 부소산성, 낙화암, 고란사, 이 모든 것도 여전히 아픔으로 다가온다. 금강의 천리 물길은 동학군의 함성이 깃들어 있는 곰나루를 스쳐 공주에서 부여, 옛 백제 땅의 한복판을 흐르다가 이곳에 이른다. 부소산 건너편 상류 쪽 천장대 앞 범바위에서 남쪽 하류인 파진산에 이르는 금강이 곧 '백마강'이다. 낙화암 절벽 밑으로 강은 깊고 강 건너편으로 흰 모래톱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백마강은 백제의 한이 맺힌 강이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했으며 적에게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삼천 궁녀가 꽃처럼 떨어져 내린 곳이 이 강이었다. 마한, 백제의 세월을 거쳐 수천 년 흘러온 강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역사다. 낙화암과 고란사에서 바라보는 백마강의 물줄기는 여전히 막힘없이 흘러간다. 아픔은 아픔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안으면서 강물은 흐른다. 그렇게 역사도 흐른다. 아마 신동엽도 여기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면서 대서사시 을 구상하였으리라.
신동엽의 시비는 바로 강 건너편에 존재한다. 그의 시비는 부여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다리 바로 못미처 왼쪽 소나무숲 사이에 있다. 시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에는 개망초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우리나라 어디에도 피어나는 꽃, 어떤 척박한 토지에도 무리지어 꽃을 피우는 끈질긴 생명력, 시비 근처의 개망초꽃은 신동엽이 그리도 사랑했던 우리네 민초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 화사한 그의 꽃 /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 맑은 그 숨결 /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 울고 간 그의 영혼 /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신동엽, 전문)'
아이들과 함께 시비에 새겨진 시를 낭송했다. 전문이 아니라 두 연만 새겨져 있어 아쉬웠지만 그의 마음을 읽어내기엔 충분했다. 신동엽이라는 시인에 대한 석연찮은 평가들로 인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반공순국위령비도 보인다. 시비 바로 옆에 위치한 거대한 위령비, 보기에도 위압적인 반공순국위령비의 건립 이유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자 얼굴을 찡그리는 아이들이 많다. 이미 기행을 떠난 아이들 영혼의 키는 그만큼 훌쩍 자라있었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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