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리색의 심플한 코트에 어깨를 살짝 덮는 가지런한 생머리와 투명한 얼굴빛에서 흘러나오는 도도함, 영화 '텔미썸싱(Tell Me Something)'에 나오는 주인공 심은하의 이미지이다. 하드고어 영화의 범죄자의 스타일을 그처럼 세련되고 단아하게 연출한 것은 물론 극적인 반전을 위한 설정이다.
반면, 꽃무늬가 그려진 남방을 주로 입었던 '태양은 없다'의 정우성의 스타일이나 데이빗 린치 감독의 '광란의 사랑(Wild At Heart)'에서 뱀가죽 재킷을 입고 나오는 니콜라 스케이지의 의상 콘셉트는 캐릭터가 갖는 특징을 직설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대중예술로서의 영화는 대중문화의 요소들을 차용하여 그 시대의 흐름을 다시 반영(反映)시켜준다는 점에서 영화 속의 의상은 대중들로 하여금 유행의 속도를 강화하거나 창출하는 직·간접적 역할을 한다.
사실 대중문화의 본질은 전통의 고정관념을 조롱하는 데에 있다. 그런 속성들은 대중문화의 생산자들 즉, 대중예술가들의 패션에 의해 가장 극명하게 노출된다. 우리나라의 Rock 그룹 '들국화'가 파마머리와 판탈롱 바지, 가죽부츠로 연출한 그들의 의상에서 히피문화를 재현하며 물질문명으로 부터의 획일화를 거부하고 자유사상을 추구했듯이, 요즘의 힙합패션에서 대표되는 힙합문화는 과거의 히피문화와 비슷한 사상적 동질성을 보여준다.
한때 의미도 없는 야릇한 영문이 새겨진 T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을 놓고 '국어사랑'을 외치며 민족적 정체성 문제를 거론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의 문화적 양상은 이제 패션에서도 마치 팝 아트적인 이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인정하듯 '사회의 암묵적 동의'로 발전하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대량생산이 갖는 획일화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찾기 위한 젊은이들의 '반항'이 그들의 패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메트로섹슈얼, 미니멀리즘, 힙합문화 등으로 주도되는 최근 패션 경향 속에서도 여성 의상들은 1970년 초에 생성된 키치패션(Kitch Fashion)이 소위 '공주풍' 패션으로 여전히 그 명맥이 이어지면서 유행의 순환을 실감케 한다.
'어떤 음악을 듣는가 혹은 어떤 옷을 입는가'로 그 사람의 인간성은 가늠할 수 없지만 그 개인의 감성이나 취향, 미적 감각은 물론 사회성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 대중문화로서의 '패션'이 늘 한 시대를 반추해 왔듯이 다가올 미래사회의 패션 또한 당연히 그 미래사회를 반영할 것이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전소연(영화감독)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