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싸게 사둔 땅…건설사, 땅을 치고 운다

"얼마나 버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지가 고민입니다."

시공·시행사들이 높은 금액으로 매입한 사업 부지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미분양이 쌓이고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분양가 상승'을 예상하고 높은 가격에 매입한 사업 예정 부지의 '사업성'이 사라진 탓이다.

주택업체 관계자들은 "올 들어 분양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업성이 좋던 땅들도 이제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며 "땅값이 높은 일부 땅들은 손해를 보며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자고 나면 분양가격이 오르던 '분양가 고공행진' 대신, '마이너스 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분양하면 두 배 손해(?)

대구 달서구 지역에 500가구 규모 아파트 사업을 위해 시행사와 지난해 '계약'을 체결하고 땅값 지급보증까지 섰던 A건설사. 이 회사는 요즘 '수십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며 계약 파기를 검토중에 있다. 땅값이 높아 분양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지급 보증으로 시행사에서 금융권 돈을 빌려 땅값을 이미 지급한 만큼 계약 파기를 하면 땅값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며 "사업 추진을 위해 손해를 보며 분양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회사 내부적으로 손을 드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했다.

A사는 분양에 나섰다 준공 때까지 계약이 되지 않으면 수백억 원에 이르는 공사비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만큼 지금 포기하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입장. 만약 A사가 계약 파기를 하면 아파트 사업 부지란 명목으로 '현실성 없이 높게 매입한' 땅값과 실제 땅값만큼의 차익 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A사는 사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그나마 '포기'가 가능한 행복한(?) 경우.

고가의 주상복합 아파트나 1천 가구 이상 아파트 시공 계약을 체결한 시공사들은 지급 보증 금액이 많아 사업 포기조차 불가능한 사례가 많다.

주변 시세보다 50%나 높은 분양가를 예정하고 주상복합 시공 계약을 했던 B사는 사업성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시행사로부터 실비에 사업 지분을 인수한 뒤 자체 사업 추진에 나섰지만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어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 관계자들은 "시공사가 지급보증을 섰지만 사업성이 나빠 분양을 하지 못하는 단지가 대구에만 10여 곳을 넘는다."며 "시간이 갈수록 '아파트 사업 환경'이 더욱 나빠지고 있어 이중 일부는 시공사들이 손해를 감수하며 계약을 파기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땅값 거품'을 빼자

고 분양가로 사업성이 불투명해지면서 땅값 '구조조정'도 한창이다.

시행사가 제2금융권 등으로부터 계약금을 빌려 부지 계약을 한 경우라도 땅값이 높으면 아예 시공사 확보가 불가능, 사업 추진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부터 대구 수성구 내 사업부지 확보에 나섰던 C시행사는 이미 70여 억 원의 계약금을 투입했지만 최근 지주들을 상대로 '계약 해지' 통보를 하고 있다. 시행사 관계자는 "땅값이 최소한 평당 100만 원 이상 낮아져야 사업성이 확보될 수 있다."며 "아파트 사업을 조건으로 계약을 한만큼 사업이 불투명해지면 계약금 반환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D 시행사는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민간-공공 공동택지개발을 통한 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민간 시행사가 택지의 50% 이상을 확보한 뒤 주택공사나 도시개발공사에 공동 사업 신청을 하면 나머지 부지는 공공기관이 강제 매수에 나설 수 있어 땅값을 내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D사 측은 "공동 사업을 하면 사업성이 없지만 이미 50억 원이 넘는 돈이 현장이 투입돼 있어 원금이라도 회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시행사뿐 아니라 '브리지 론'(계약금)을 지급한 제 2 금융권도 비상이다.

이미 땅값 계약금을 지급했으나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지는 부지들이 늘면서 의욕을 상실한 시행사 대신 직접 해결 방안을 찾고 있는 것.

금융권 관계자들은 "계약금을 지급한 부지 사업이 중단되면 돈을 빌려준 금융권도 원금과 이자 손해를 감수하거나 계약금 일부를 손해 보고 그만큼 땅값을 조정해 시공사를 찾는 방안밖에 없다."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미분양 아파트, 소비 심리를 옥죄는 금리 상승과 세금 중과. 주택업계에서는 지방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IMF 시절과 같은 시장 붕괴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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