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 비 오는 날 꽃밭에 물 주지 맙시다!

간혹 '정서불안'과 '정신질환'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을 지도하다 보면 학생이 당황할 때가 있다. 이것은 나의 잘못이다. 보통 학교에서 정신질환인 학생은 거의 없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방황하는 학생은 거의 정서불안이다. '정서'란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심리적인 느낌이고, '정서불안'은 어떤 환경이나 사건을 계기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진 심리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 심리상태가 계속될 때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가출 등이 생긴다.

내가 상담하는 학생은 대부분 정서불안 학생이다. 나는 정서불안의 원인을 지식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속도, 학교성적, 이성문제, 친구문제, 가족문제, 가난, 건강, 인터넷게임·음란물 중독, 부족함이 없는 생활에서 오는 자신감 결여, 진로 및 진학, 성(性)에 대한 호기심으로 분류한다. 예컨대 가난으로 정서불안을 앓고 있는데 다른 원인에서 접근해 학생을 대하면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없다. 학생의 정서불안은 원인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고칠 수 있다.

요즘 학생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져 꽃밭에 물을 주라고 하면 비 오는 날도 물을 주는 학생이 있다. 기분 나쁘다면서 화장실에 가서 벽을 쳐서 손을 다친다든지, 유리창을 깬다든지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상담이란 개념을 넘어서 치료란 개념을 도입했다. 조언과 상담의 상위개념이 치료이다. 조언은 내가 간단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고 상담은 고민을 들어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는 '학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주어 정서불안에서 정서안정으로 행동변화가 일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가장 치료가 어려운 것은 가정에서 일어난 일로 정서불안을 앓는 학생이다. 이런 학생들은 작은 가정불화에도 심리적 안정을 잃어 학교생활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을 놓쳐 평생 후회를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도, 학교 기물을 부수고도, 친구를 괴롭히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환자가 너무 많다. 이런 일로 집에 전화를 하면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큰다면서 오히려 나를 훈계하는 학부모도 있다.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하다. 비가 오는데 물을 주지 말라고 해도 계속 물을 주는 환자에게 나는 더 좋은 치료방법이 없는지 고민을 하면서 교문을 들어선다. 2학기에는 비 오는 날 꽃밭에 물을 주는 학생이 좀 적었으면 한다.

이원수(경운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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