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권의 책] 까매서 안 더워?

얼마 전 대구 한 공공도서관에 문을 연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공부방 취재를 간 적이 있다. 필리핀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를 둔 아이들이 자원봉사 대학생 언니와 함께 즐겁게 공부하던 참이었다. 학교가 재미있냐, 고민은 뭐냐고 물었더니 나오는 대답은 또래 초등학생들과 다를 게 없었다. 조금 달라 보이는 외모 때문에 이 아이들 역시 한국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평범한 초등학생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잠시 잊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요즘 교육계에서도 다문화 가정, 이주가정 자녀를 위한 정책이나 서비스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깊어진다는 것은 사회가 성숙해지고 있다는 증거일 테지만, 이들에 대한 편견의 벽은 여전히 높다.

새로 나온 책 '까매서 안 더워?(박채란 글/파란자전거 펴냄)'는 코시안(한국인과 다른 아시아인의 결혼으로 태어난 2세) 아이들에 대한 얘기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체 주민의 70%가량을 차지한다는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일명 '국경없는 마을'이 무대다. 연작동화인 이 책에는 3명의 코시안 아이들이 등장한다.

어머니가 필리핀인이지만 자기도 한국 사람이라며 하루도 빠짐없이 빨간 월드컵 응원복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티나. 그리고 부모님의 미국 유학길을 따라 갔다 이방인으로 취급받으며 고통받고 돌아온 민영. 한국에 돌아온 민영이는 티나를 이방인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아이들 속에서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선뜻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티나를 통해 힘들었던 일 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불법체류자로 있다가 몽골로 쫓겨가게 된 엄마의 일이 자기 때문이라며 자책하고 말을 잃은 성완이의 얘기는 더 애잔하다. 주변에 친구도, 따뜻하게 말 한마디 들어줄 어른도 없었던 이주아동 성완이가 떠돌이 개를 친구로 삼는 모습은 코시안 아이들의 상처를 느끼게 해준다.

학교에서 너스레를 잘 떨고 활달하며 낙천적인 동규도 나름의 고민과 갈등을 품고 있다. 필리핀계 코시안인 동규가 학예 발표회를 둘러싸고 반 친구들과 벌이는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다. 동규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만물노트를 통해 동규의 남모를 마음속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준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동규가 친구들과의 연극에서 아라비아 왕자 배역을 멋지게 소화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박수가 나올 것처럼 유쾌하다.

저자는 글을 통해 편견 없이 타인을 이해하고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전달하고 있다.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코시안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 자녀들에게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국경없는 세상에서 살게 될 아이들에게는 '국경없는 마음'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기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중인 외국인 노동자는 34만5천 명에 달하며 불법체류자들도 16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숫자가 이처럼 점점 늘어나고 불법 체류자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영이는 같은 반 친구인 티나가 따돌림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쉽사리 도와주지 못하고 오히려 티나를 멀리한다. 티나를 보면 자신이 미국에서 일 년 동안 살면서 겪었던 이방인으로서의 상처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민영이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자녀인 코시안들도 늘어나고 있다. 코시안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보고 우리 정부와 학교, 지역사회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토론해보자.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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