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잘못을 했는지, 어린 딸이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고 훌쩍입니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서 속삭였습니다.
옛날에 말이지, 평화로운 양들의 마을을 늑대들이 점령하였대. 양들이 술렁이자 곧 늑대들은 오래도록 효과적으로 양들을 다스리기 위해 의사와 관리를 파견하였어. 온순하던 양들이 조바심과 불면증으로 밤을 꼬박 지새우는가 하면, 점차 참을성이 없어져서 걸핏하면 이웃들과 싸움질을 하였기 때문이지.
의사는 양들을 찾아가 진찰을 하였어. 그러나 착한 양들은 아무도, 당신 늑대 때문이오, 당신이 없어지면 이 불안증세가 사라질 것이오, 라고 바로 이야기할 수 없었대. 눈빛 따뜻한 의사가 마음 상할까봐서였지.
관리도 양들을 찾아내어 싸움을 말렸어. 그러나 소심한 양들은 아무도, 당신 늑대 때문이오, 당신이 사라지면 우리가 싸울 일이 없을 것이오, 라고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였대. 위세 당당한 관리가 해코지할까봐였지.
고심 끝에 늑대의사는 모든 양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약을 처방하였고 늑대관리는 체계적인 규율과 공평한 법질서를 확립해나갔어. 자상한 늑대의사와 현명한 늑대관리 덕분에 마을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대.
하지만 늑대 때문에 생긴, 그래서 늑대가 물러가야 해결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선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세월이 지나가자 다 잊어버렸어. 오히려 안정제를 처방해주는 늑대의사가 없으면 양들은 잠시도 편안히 살지 못했고, 치안을 담당해줄 늑대관리가 없으면 양들의 마을은 하루도 마음 놓고 지낼 수가 없었더란다….
말을 마치자 한참을 생각하던 딸은, 아빠, 오늘은 무슨 이야기 하고 싶은 거야? 라고 자못 심각하게 묻습니다. 세상 일에 마음 상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으응, 엄마가 너 혼내는 것 보다가 그냥 생각한 거야, 하고 말해버립니다.
그러자 딸이 톡 쏩니다. 그럼 엄마는 늑대고 내가 양이란 말이야? 참 아빠는 이상해, 우린 가족이잖아? 왜 아빠는 늘 편을 갈라 싸우고 어렵게 말을 돌려서 마음 아프게 하는 이야기만 만들어? 라고 말이지요. 딸은 곧 엄마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즐겁게 놀다 막 잠들었습니다. 어린 딸에게 마땅하게 설명할 수 없었지만 자는 아이 귓불에 대고 나는 속삭였습니다.
그래, 아빠는 부족해서 회의와 번민의 외날개로 하늘 가장자리를 퍼덕일지언정 어리석고 위선적인 타협은 할 수 없다만, 네가 더 크면 진정한 갈등과 화해를 통섭한 양날개로 함께 넓은 하늘 멋지게 날아보자, 고 말이에요.
조현열(아동문학가·신경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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