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올라갔다가 해가 저물어질 때가 되면 등산객들은 下山(하산) 준비부터 한다. 텐트를 걷고 버너를 챙기고 쓰레기를 담으며 깨끗한 뒷마무리에 팀의 손발을 맞춘다. 시골 장터도 마찬가지다. 국밥집 주인은 국솥의 밑불을 끄고 품바 엿장수는 엿판을 추슬러 짐 쌀 준비를 한다. 하산할 때가 다 됐는데 새로 버너 불 피우고 손님도 없는 파장 마당에 국솥 아궁이에 꾸역꾸역 장작불 새로 지피고 있으면 누가 봐도 한구석 모자라는 바보로 본다.
정권 파장에 수천 명의 공무원을 증원하고 "다음 정권에서 기자실이 되살아날 것 같아 대못질을 해버리겠다"며 기자 등록제까지 만들어 언론 억압에 열 올리는 노무현 정권의 모습이 파장 마당 국솥에 장작불 피우는 꼴과 꼭 닮았다. 남은 임기가 단 하루라 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핑계 댈지 모르지만 그 얘기는 목적과 동기가 좋은 일을 私心(사심) 없는 자세로 할 때나 하는 얘기다.
노 정권의 '언론 한풀이'는 아무리 좋은 쪽으로 이해해 보려 해도 내일 지구가 끝나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그런 마무리 정신으로 보이지 않는다.
언론인을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이나 하는' 부류로 보는 수준의 언론관을 지닌 대통령. 그는 기자실에 대못만 쳐버리면 비판적인 신문들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기자들은 노숙자처럼 길바닥으로 뿔뿔이 흩어져 무슨 짓을 해도 들통 안 나서 좋은 '신문 없는 정부'가 될 줄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이뤄낸 역사와 사상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대못질로 언론을 끝장낼 수 있다는 그런 발상은 바보나 하는 생각이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토마스 제퍼슨 전 미국대통령은 200여 년 전 전임 애덤스 정권이 정부에 대한 불만을 자극하는 기사나 글을 쓰면 처벌하는 '치안방해법'을 만들었을 때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그 법에 의해 구금돼 있던 죄수들을 몽땅 사면했다. 그는 치안방해법을 '다른 모든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유일한 것인 자유로운 언론을 국민들로부터 박탈하는 위헌적 악법'으로 보았다.
만약 다음 대선에서 토마스 제퍼슨 같은 제대로 된 언론관을 지닌 민주적이고 자유사상을 가진 대통령이 나오고 그런 역사를 본받는다면 노무현 정권이 박아놓은 대한민국 기자실의 모든 대못은 다시 되빠질 게 뻔하다. 야당 후보는 이미 그렇게 약속도 했다.
'죽치고 앉아서……'라는 말은 어떤 자리에 앉아서 할 일은 안 하고 가치 없는 일이나 하잘것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그렇다면 몇 달 후면 되빠질 대못을 박느라 국회에서까지 시끄럽게 싸우게 만드는 허튼짓에다 18세기의 언론 자유사상보다 못한 거꾸로 가는 유치한 시대정신을 고집하며 언론에 한풀이나 하고 있는 노 정권의 모습이야말로 그들 말처럼 '죽치고 앉아서 엉뚱한 시빗거리나 만들고 있는' 꼴이 아닐 수 없다.
"국정홍보처에 죽치고 앉아" 언론 길들이는 규제를 짜내려고 잔머리나 굴리는 사람들이나 "청와대에 죽치고 앉아" 신용불량, 가짜 박사 여자(동국대 신정아 전 교수) 뒤봐주기 의혹이나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그 나물에 그 밥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임기 말 파장 장터 국솥 밑불 빼듯 국정 뒷정리나 제대로 하라는 뜻에서 그들이 우리(언론)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로 되충고한다.
경제 회생 같은 좋은 일은 사과나무 심듯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되 쓸데없는 규제나 만들고 권력을 이용해 보스의 옹졸스런 한풀이 代理戰(대리전)이나 치르고 남의 대학 일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며 허튼짓 하려거든 '차라리 그냥 죽치고 앉아 있으라.' 그게 정치 발전, 언론 자유, 국민 살림살이 모두를 위해 좋은 길이다. 아무리 나쁜 언론도 선무당처럼 설치는 정권보다는 낫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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