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대구 수성구청 별관 지하 대회의실. 종일 빗줄기가 내리긋던 칙칙한 바깥 풍경과는 달리, 회의실 안은 저마다 책을 든 수백여 명의 시민들로 시끌벅적했다. 줄지어 선 테이블 위에는 수천여 권의 책이 종류별로 진열돼 있었다. 정신없이 그림책을 넘기는 아이들과 동화책을 몇 권씩 집어든 엄마들, 눈빛을 반짝이며 교양서적을 뒤적이는 중년 남성들까지 회의실은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날 행사는 새마을회 대구시지부 수성구 새마을문고에서 주관한 '제10회 알뜰도서 무료교환전'.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헌책들을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바꿔주는 행사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규모가 두 배 이상 커졌다. 이날 준비된 신간은 무려 3천 권. 출간된 지 오래된 책 1천여 권까지 합하면 4천여 권을 훌쩍 넘었다.
행사장 한쪽에는 '독서치료상담코너'도 마련돼 있었다. 독서치료는 개인적인 고민과 당면한 문제들을 상담과 질문지를 통해 파악하고 상황에 맞는 내용의 책을 읽으면서 풀어나가는 상담 치료 방법. 상담사 조영수(49·여) 씨는 또박또박 질문지를 써낸 문선현(10) 양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문 양의 행복지수를 가늠했다. 조 상담사는 "문 양의 경우 '엄마는 요리를 잘한다.'는 응답을 하는 등 가정분위기가 화목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문 양에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아이들이 있음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내용의 동화를 권했다."고 했다.
이날 행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길도 따뜻했다. 여덟살 난 아들과 함께 찾았다는 강모(37·여·수성구 범어동) 씨는 "구청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가 무료 교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아이들에게 좋은 책도 많고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고 좋아했다.
수성구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주민도 적지 않았다. 임신 9개월에 접어들었다는 김상원(33·여·달서구 용산동) 씨는 "집에 묵혀뒀던 시집과 성공학 책들을 이중섭 화보집과 부담없는 수필집으로 바꿨다."며 "이런 행사가 다른 곳에서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5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몰렸고, 이들이 바꿔간 책은 2천여 권에 달했다. 새마을회는 수집된 책들 중 일부는 폐지로 처리하고 남은 신간과 상태가 좋은 책들은 도서산간지역에 기증하거나 이동도서관을 통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윤식(52) 새마을회 새마을문고회장은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상을 보다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건 감동적인 한 권의 책"이라며 "내년에는 1만 권 규모까지 행사를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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