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황성신문 창간

1898년 황성신문이 창간되었다. 남궁억과 나수연 등이 국권회복과 국민을 계몽하고 항쟁의 정신을 기르기 위하여 '대한황성신문'의 판권을 인수하여 창간했다. 이 신문은 오늘날의 합자회사와 같은 股金制(고금제)를 최초로 사용하여 자본가를 모아 발행한 민간자본 신문이었다.

초기 주필로는 유근·박은식이 활약하였고 그 뒤 장지연이 가담하였다. 문자는 국한문 혼용체로 사용했고 지면구성은 3단으로 논설·관보·외보·별보·잡보·광고 등으로 구성했다. 지면 크기는 초기에는 소형(23×31cm)이었으나, 1899년 11월 13일부터는 지면을 조금 키우고(25.2×34.5cm) 4단으로 하여, 4면을 발행하였다. 1900년 1월 5일자부터는 영국 로이터통신사로부터 공급된 외신기사를 실었다.

기사논조가 일본의 침탈야욕을 폭로하고 배일애국사상고취에 앞장서면서 사장 남궁억은 재임중 두 번이나 구속되기도 했다. 1905년 을사늑약에 대한 비분강개를 담은 장지연의 논설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이 게재되자 황성신문은 3개월간 정간되었고 장지연은 체포되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국권침탈로 신문 제호가 '한성신문'으로 강제로 바뀐 채 9월 14일까지 발행되다가 폐간되었다.

▶1977년 우주관측선 보이저1호 발사 성공 ▶1997년 테레사 수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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