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네요."
"'약관'이 그렇습니다. 약관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약관'은 만능이었다. 소비자들은 일방적으로 불리한 일을 당하고도 '약관' 때문에 울었다. 특히 전기·가스 등 독점적 사업자들과 맞닥뜨리면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이 앞으로는 조금씩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분야에 대한 불공정 약관과 관련, 대대적 조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어떤 피해가?
한국도로공사가 팔고 있는 고속도로카드.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 카드 사용자들은 어쩌다 자신의 잘못으로 카드가 훼손되면 잔액확인이 가능한데도 남아있는 금액을 돌려받지 못했다. 한국도로공사의 약관에 '고객의 책임으로 훼손된 카드에 대해서는 환불을 못해준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드 사용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카드마다 고유번호가 있어 당연히 잔액확인이 가능한데도 환불을 해주지 않는 것은 불공정행위"라며 소비자단체가 문제를 제기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선 뒤에야 지난 5월 이 약관이 고쳐졌다. 한국도로공사가 뒤늦게 이 약관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고속도로카드를 이용한 차량은 4억780만대.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고속도로카드를 1조1천560억 원어치(3천600만 장) 팔았다.
전기 사용자들도 억울해도 참는 것이 많았다. 어쩌다 요금이 미납돼 전기공급이 중단되면 자신의 명의로 다른 장소에서 쓰고 있는 전기도 공급이 중지될 수 있었다.
이런식으로 한국전력은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약관을 시행해오다 공정위에 적발됐고, 지난달 23개 약관조항을 스스로 고쳤다.
도시가스도 사정은 마찬가지.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대다수 도시가스 공급사업자들은 도시가스 사용자가 명의변경을 하지 않은 채 이사를 간 뒤 요금이 체납되면 해당 집에 새로 들어온 입주자에게 체납된 요금을 물리고 있다. 이 역시 '억울한 일'이지만 도시가스 사업자들은 '약관'을 내세우고 있다.
전기·가스 등 독점적 사업자들의 약관 뿐만 아니라 최근 가입이 늘고 있는 상조 회사 약관도 소비자들의 원성 대상이다.
Y씨는 지난해 2월 B상조의 240만 원짜리 상품에 가입, 매달 4만 원씩 24차례에 걸쳐 모두 96만 원을 냈다. Y씨는 해약할 사정이 생겨 해지환불을 요구했으나 돌려받은 돈은 불입금액의 21.8%에 불과한 21만 원.
공정위에 따르면 이 경우, 불입금액의 절반을 제외한 48만 원 이상은 돌려줘야한다. B상조회사가 현행 법을 어긴 약관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고쳐지나?
공정위는 일단 지난 7월, 20개 상조업자의 불공적약관을 시정조치했다. 공정위는 이어 전국 151개 상조업자들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늦어도 10월까지는 불공정 약관 시정을 끝낼 방침.
공정위는 한국전력공사의 불공정 약관 개정에 이어 지난달부터는 전국 33개 도시가스 공급사업자들의 불공정약관도 조사중이다. '이사간 사람'의 체납 요금을 '이사온 사람'에게 물리는 등의 불공정약관을 고치겠다는 것.
공정위는 최근 피해가 늘고 있는 대부업체와 관련, 50개 대형 대부업체의 약관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6개 대형 포털업체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중이다. 공정위는 포털과 이용자 사이의 서비스 이용약관, 포털과 콘텐츠 제공사업자 간의 약관, 포털과 광고주 사이의 약관 등에 대해 불공정 여부 조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만환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제도팀장은 "가스 등 서민들의 실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서 불공정한 약관 때문에 소비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며 "공정위가 직권으로 조사에 나서 서민들의 불편을 줄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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