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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칼럼] 거짓말, 깜, 그리고 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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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어느 철학자가 걸핏하면 부인에게 얻어맞으며 살고 있었다. 마을에도 입소문이 퍼져 철학자 집 안에서 '우당탕' 소리만 나도 '또 맞는구나.'고 짐작할 정도였다. 어느 날 저녁 또 한바탕 우당탕 소리가 나고 2층 계단에서 뭔가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튿날 아침 이웃사람이 얼굴이 부어오른 철학자에게 넌지시 물었다.

"선생님, 어젯밤 집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니야 아무 일 없었어."

"2층 계단에서 뭔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는데요?"

그러자 철학자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응, 그거 내 외투가 계단에 굴러 떨어진 소리야."

"아니 선생님 외투가 어떻게 저 혼자 계단에서 굴러 내려옵니까?"

궁색해진 노 철학자는 이렇게 둘러댔다.

"그게 말이야. 실은 그 외투 속에 내가 들어있었어."

거짓 변명도 이 정도 해학적 수준이 되면 거짓말이 밉다기보다는 부끄러운 진실을 드러내 보이기 힘든 보통 사람의 솔직한 본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용서의 여유랄까 인간적으로 봐주고 싶은 포용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아무 일 없었어.'와 '외투가 굴러 떨어진 소리야.'까지는 최대한 빠져나가 보려는 보통 사람들의 거짓 해명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내가 매 맞고 굴러 떨어졌다네.'라고는 못하더라도 '외투 속에 내가 들어 있었어.'라고 둘러댄 대답은 진실을 숨기려 했다기보다는 廉恥(염치)를 알고 부끄러운 걸 알면서 한 고백임을 느끼게 된다. 둘러대긴 했어도 질 나쁜 거짓말쟁이란 느낌은 안 든다는 얘기다.

최근 거짓말 의혹에 휩싸여있는 일부 청와대 비서관들의 거짓말 시리즈에서는 그런 철학자의 변명처럼 여유로운 해학이나 진솔한 반성이 없다. 굴뚝 위로 시커먼 연기가 나는데도 '나는 이쑤시개 한 개도 태운 게 없다.'며 발뺌하는 모습만 보인다. 꼬리도 금세 밟힌다. '30년 공직 생활을 바르게 해왔다.'고 한 지 며칠도 안 돼 2천만 원 받아먹은 비밀이 들통 났다. 질 나쁜 거짓말이다.

가짜 여박사 비호 의혹을 받아온 정책 비서관도 스님의 반박 증언이 나오면서 똑같은 질 나쁜 거짓말쟁이 의심을 받고 있다. 거기다 명색이 국가 재정 통계를 무려 16조 원이나 거꾸로 계산해 발표하는 나사 빠진 정부의 거짓 통계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총체적인 거짓말 정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양치기 소년 같은 선례를 너무 자주 보다 보니 탈레반 테러범에게 200억 원을 주고 인질을 데려왔다는 외국 언론의 추측 보도도 긴가민가하게 된다.

정부뿐만 아니라 이 정권에서 녹을 먹고 누릴 것 다 누리다가 빠져나가 新黨(신당)을 차린 사람들은 나가서도 '거짓'의 물때를 못 벗고 있다.

거짓 유령 선거인단으로 경선을 치르고 투표 결과를 뒤바꿔 거짓된 순위를 발표하는 희한한 政黨(정당)이 언감생심 정권 재창출을 외친다. 최소한 '외투 속에 내가 들어있었어.'하는 낯부끄러워할 줄 아는 염치가 보이질 않는다. 대통령은 그런저런 거짓말의 의혹들을 두고 '깜'이 안 된다며 언론을 비판했지만 언론이 보기엔 그분 주변에야말로 진짜 깜이 안 되는 것(사람과 일)들이 수두룩 널려있다.

골프 치느라 앉혀준 국무총리 자리도 못 지키고 밀려난 인물이 어떻게 대통령 깜은 될 수 있다는 건지도 그렇고. 부동산, 땅, 강남아파트는 전쟁 치르듯 닦달하더니 퇴임 후 살 집 부근은 측근들의 땅을 이어 붙여 3만 6천459㎡(1만 1천28평) 면적의 세칭 '노무현 타운'을 만드는 것도 염치를 생각게 하는 일이다.

지금 그런 깜이 안 되는 사람들, 깜 안 되는 정당. 거짓과 몰염치한 일을 저지르는 집단들이 민심은 못 잡은 채 오직 '한 방'의 僥倖(요행)만 기다리고 공짜 재집권을 노리고 있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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