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폴 뉴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집에 최고급 스테이크가 있는데 밖에 나가서 영양가도, 맛도 없는 정크 푸드를 먹을 필요가 있나요."
이 말은 평생 애처가로 소문 난 폴 뉴먼에게 당신은 외도의 유혹을 느껴본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먹을 것에 비유했다는 점에서 그 대답을 높이 살 수는 없지만, 당대 최고의 섹시 가이였던 폴 뉴먼이 아내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대개 결혼을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한 사람 중 많은 이가 바람이라고 불리는 외도의 유혹을 겪어보았다고 고백한다. 때로 누군가는 '외도를 했노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결혼은 인생에 있어 중대한 일 중 하나이다. 결혼의 긴장이 배우자의 죽음 다음 순위에 있다는 것도 결혼의 속성 중 일부를 짐작케 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성과 성장배경이 다른 한 사람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연애는 기록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결혼에는 문서적 기록과 법적 책임이 따른다. 가족의 일원이 됨으로써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새로운 의무조항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부남 혹은 유부녀의 일탈을 그린 영화들은 가족제도를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견해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변영주 감독의 '밀애'도 그렇다. '밀애'는 전경린의 소설 '내 생애 하루 뿐일 특별한 날'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전경린은 90년대, 한 때, 불륜소설의 최고 작가로 알려졌었다. 이는 꼭 비판만은 아닌데, 전경린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찾는 여성형을 '바람', '외도'라는 소재를 통해 잘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흘러가는 시간 속, 똑같은 옷차림, 똑같은 아파트에 살아가는 여자들은 가판대 위의 일간지처럼 그저 그런 이미지로 묘사된다.
'밀애'는 나쁜 여자들이라기 보다 나빠지고싶은 여자들의 욕망을 그리고 있다. 교통사고처럼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그 상처를 회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녀는 사고의 충격으로 자신을 거의 놓아 버리고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잃고 만다. 그러던 중 요양차 내려 간 근교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 새로운 열정을 맞는다.
솔직히, 난 아직 그와 그녀의 만남을 '사랑'이라고 부르지는 못하겠다. 그 둘의 만남은 사랑이라기보다 씻김굿이었고, 씻김굿이면서도 한편 금지된 욕망으로의 일탈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을 피웠던 남편의 과거는 훌륭한 알리바이가 되어 여자의 일탈에 면죄부를 준다. 그렇게 나빠지고 싶던 여자는 나빠질 기회를 만난다.
결혼 생활을 하다보면 안정이 지독한 권태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와의 저녁 식사는 매일 비슷하고 그녀와의 잠자리 역시 회진을 돌 듯 순서가 정해져 있다. 그때 사람들은 이 지독한 일상을 목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벗어나려고 몸짓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세상에 권태의 때를 입지 않은 일상은 어디있을까? 끝없이 원을 그리는 아날로그 시계처럼 그렇게 삶이라는 게 별 재미 없는 건 아닐까? 재미없는 삶을 바라보며 견디는 것, 어쩌면 그것은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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