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경제의 한 축 구미가 위태롭다. 또 다른 축인 포항권은 글로벌 기업 POSCO가 지탱하는 철강업과 울산권 경제의 후광효과로 건재한 반면 구미의 상황은 갈수록 어렵다.
LG필립스LCD는 경기도 파주로 차세대 사업부분을 이전했고 삼성전자도 '애니콜 신화'의 시발지인 구미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삼성 측에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휴대전화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을 업계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하청업체 사장은 "삼성의 선택은 현실이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생산기지 이전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막을 수도 없다. 우리 같은 업체들은 홀로서기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하소연이다.
삼성은 최근에는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대규모 연구소 설립도 중단, '구미를 멀리 한다'는 외부의 우려를 더하고 있다. 삼성과 LG의 중요성은 이들 기업이 수천 개의 협력업체를 거느린 선도 기업군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침을 하면 협력업체는 그야말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그런 구미가 지금 샌드위치 신세다. 하이테크산업 기업은 해외로,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단순 제조업종은 중국의 저임금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구미의 문제는 구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구미가 입술(脣)이라면 대구는 이(齒)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춘추전국시대 脣亡齒寒(순망치한: 이해관계가 밀접해서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위태로워진다는 뜻)을 예로 들며 괵나라의 몰락이 우나라에 가져 올 파장을 우려했던 우나라의 현인 궁지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실 구미와 대구는 한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에 따르면 구미사업장 직원 가운데 3천 명이 대구에서 출퇴근하고 있다고 한다. 또 모바일기업은 구미에서 칠곡, 대구 북구로 이어지는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구미-칠곡-대구가 鼎立(정립)해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구미가 흔들리면 튼실한 제조업 기반이 없는 대구도 흔들린다.
우리나라 수출신화를 주도했던 구미가 이 지경이 되도록 우리는 강 건너 불 보듯 하지는 않았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기업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안이함'이 문제였다. 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업종변화의 흐름을 읽어 투자기반을 마련해 준다든지, 각종 규제를 완화해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주는 등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해결하려는 혜안이 필요했다.
인력기반이 무너진 것도 되짚어 볼 일이다. 구미 전자부문의 주요 인력공급원이었던 경북대 전자공학과와 금오공대 인재들이 구미보다는 수도권에 입도선매당하거나 자원해 갔다. 기업관계자들은 그나마 구미로 오는 인력도 10여 년 전보다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대안은 없을까. 먼저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우수 인력기반을 만들기 위해 금오공대와 경북대 공대를 통합하고 구미에 통합공대를 설립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 같은 문제점을 의식, 구미지역 경제계와 시민단체는 양 대학의 통합운동을 열렬히 펼치고 있다. 두 대학은 당장의 이해관계만 보지 말고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자세로 적극적인 통합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는 '대구 경북은 하나다.'라는 인식이 절대 필요하다. 이 같은 인식이 밑바탕이 됐을 때 대구와 구미를 한 묶음으로 연계하는 산업전략 수립이 가능해진다. 모바일산업같이 구미-칠곡-대구에 산재한 전자산업과 기존 제조업을 잘 엮어 확대 발전시키고 기업 하기 좋은 여건, 살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기업들이 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최근 대구시와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일찌감치 경제자유구역을 따낸 인천이 경제력에서 대구를 따돌리고 요란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소리없이' 무너져 내리기보다는 '소리나는' 성장을 위해 구미와 대구, 경산, 영천을 벨트로 잇는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이뤄내야 한다.
정창룡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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