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 올해는 비 때문에 약속했던 천사데이(10월 4일)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양해하시고 저희들의 성의를 받아주세요."
10일 오후 포항 죽도성당 뒤편 노인무료급식소 요안나의 집. 포스코에서 철강제품 포장업을 하는 (주)삼정피앤에이 봉사단원들이 15㎏들이 고구마 30박스를 들고 이곳을 찾았다. 지난해에도, 그 전 해에도 찾았던 낯설지 않은 얼굴끼리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예전만 같지 못했다.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송구함 때문이었다.
삼정피앤에이 봉사단원들은 벌써 수년째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포항 기계면 봉계리 휴경지를 빌려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다. 봄 파종기부터 몇 명씩 조를 짜서 수시로 들락거리며 키운 고구마를 매년 10월 3일 수확해 천사데이에 요안나의 집을 비롯해 성모자애원, 빛살아동센터, 선린애육원 등 지역의 복지시설에 전달했는데 올해는 9월 한 달 내내 이어진 비 때문에 고구마 생장이 더뎠고 수확기 역시 늦춰져 이날에야 거둬 들였다.
수확에 나선 사람들은 밤샘 근무를 하고 아침 7시에 퇴근한 '1근조'와 4조2교대제 실시로 생긴 여유를 봉사활동에 할애하겠다며 나선 '3근조와 4근조'를 합쳐 80명이나 됐다. 참가자 대부분이 일은 서툴러도 고구마를 고맙게 받아줄 복지시설의 '가족'들을 떠올리면 힘들지 않다며 오전 일찍부터 비지땀을 흘렸다.
이날 고구마 수확을 더 신나게 만드는 요인도 있었다. 장병기 사장이 아침부터 직원들과 함께 나섰고, 이 소식을 들은 박승호 포항시장도 점심시간을 쪼개 몇몇 직원들과 함께 현장에 나와 일을 거들었다. 이렇게 일손이 보태지면서 올해 경작면적은 지난해보다 2배로 늘어난 600여 평에 수확량도 4t이 넘었지만 작업을 오후 2시쯤 모두 끝냈고 곧바로 전달이 이뤄졌다.
박 시장은 "우리 지역에 이렇게 값진 땀을 흘리는 자원봉사자들이 많다는 것은 큰 행복이요 자랑거리"라며 앞으로 틈나는 대로 현장에 나가 함께 땀흘리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 같은 시장의 격려에 힘입어 봉사단원들은 각자 지갑에서 갹출해 고구마 외에 사과와 포도 등 과일도 몇 상자씩 추가로 마련해 전달하는 성의를 보였다. 또 장 사장과 직원대표인 신엄현 씨 등은 "우리들에게 돌아오는 뿌듯함이 입소문으로 번지면서 단원들이 늘고 있다."며 "다른 것은 줄이더라도 자원봉사 경비는 늘려잡자."고 손을 모았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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