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룻을 듣다
박옥위
플룻이 내 그리움의 세포를 채울 동안
구멍을 빠져나간 공기는 안전하다
나비는 포물선을 그리며 빛을 쏟아내고 있다
앞치마에 손을 닦고 식탁에 와 앉는다
책장을 넘기고 미끄러져 간 하루 해
이윽고 한때의 폭풍우가
나를 흠뻑 적신다.
저녁입니다. 미세한 신경의 올을 조심스레 잡아당기는 듯 첨예한 긴장의 선율이 느껴지는데요. 그 선율이 감미롭게 잦아들면서 행간에 강한 여운을 불어넣습니다.
플룻(플루트)을 듣는 것이 곧 그리움의 세포를 채우는 일이기에, 화자는 거기서 더할 수 없이 안온한 정서적 위안을 얻습니다. 여북하면 나비가 포물선을 그리며 빛을 쏟아내는 몽환적 감흥에 젖기까지 할까요. '앞치마에 손을 닦고 식탁에 와 앉는다.'는 구절에서 그런 시간의 향기를 놓치고 싶지 않은 화자의 적극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플룻의 선율 자체에 대한 공감도 공감이지만, 미묘한 마음의 무늬들이 연방 선율을 따라 나옵니다. 식탁이건 책장이건 가 닿는 족족 선연한 자취를 남기지요. 이윽고 한때의 폭풍우가 온몸을 흠뻑 적시며 절정의 고비를 넘어서는 플룻. 그 완미한 감동 속으로 한껏 고조된 그리움의 정서가 천천히 미끄러져 갑니다.
박기섭(시조시인)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