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나 지금이나 적잖은 한국인들에게 권력은 매력 덩어리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과거시험 보러 가곤 하던, 소위 '선비'란 이들이 남긴 전통이나 내림이 지금도 퍼렇게 살아 있을 것 같다. 이건 정말이다.
온 세계의 동화에서 그 소년 주인공은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탐색의 길' 곧 '참음의 길'에 오르게 되어 있다. 멀리 있을 무엇인가 매우 귀하고 희귀한 것을 혼자서 찾아 나서게 된다. 한데 한국의 동화에서는 정해 놓다시피 '과거' 보러 나선다.
그 뻔한, 지천인 벼슬 찾아서, 권력 찾아서 나서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온 세계에서 가장 속된 동화가 이 땅의 동화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어진다. 그러지 말아야 할 테지만 그것만 생각하면 속이 절로 메스껍다. 그리고 세계의 동화 대하기가 부끄러워진다.
소년의 꿈이 권력과 벼슬에만 걸려 있다면 그건 결코 '청운의 꿈'이 될 수 없다. 그건 짙은 비구름의 '흑운의 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소위 국가권력이나 정치권력의 세가 크면 클수록 또 그 자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한 나라는 후진성을 면하기 어렵다. 과거 보러가곤 하던, 그 전통, 그 내림이 지금껏 남아 있는 게 안타깝다.
상당수의 한국인 가운데 권력은커녕 權(권) 자만 들어도 오금을 못 쓰는 사람, 아니면 어깨에 힘주는 사람 또는 군침 삼키는 사람 등등은 수두룩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인간들 앞에서 무턱대고 굽실거리고 따리 붙이고 하는 족속들도 적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의 고위층 비서관들이 두 사람씩이나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꼴로, 우리 한국 사회가 '권력 만능 사회'란 것을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준 것은 그 증거치고도 일급의 증거다. 그들은 각종 기관을 제 욕심대로 떡 주무르듯 했다. 경제고 문화고 무엇이든 상관없이 안하무인으로 굴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권력은 '도깨비 방망이'나 다를 게 없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럴 경우, 방망이를 휘둘러대고 두들겨 댄, 저 '사람 도깨비'들도 문제지만 그들 방망이질 따라서 춤춘 당사자들도 문제다. 권력은 요컨대 괴물이고 요물이다. 權은 나무 이름이다. 그러던 게 저울이 되고 무엇인가 방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선 權은 속임수가 되었다. 다음으로 뭐든 헤아리고 측정하는 것도 權이 되었다.
이게 바로 權의 음지와 양지다. 사회의 毒(독)이 되고 악이 되는 한편으로 사회의 만사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權謀術數(권모술수)라든가 權詐(권사)라는 말은 權의 음지 중의 음지다. 권사는 사기치기와 같은 말이다. 사기치기인가 하면 準則(준칙)이고 기준이다. 그 극단과 극단 사이에서 제 마음대로 재주넘는 게 權이다.
그러다 보니, 권세·權道(권도) 등이 그렇듯이 권력도 그 양단 사이에서 버꾸를 넘게 되었다. 권력은 그걸 쥔 자의 개인적 욕망과 야합을 하고는 설쳐대게 되었다. 올바른 저울 노릇하면서 사회의 준칙이 되고 기준이 되어서 사회를 좌지우지해야 할 권력이 권모술수며 권사에 기울어서는 사회를 제 마음대로 움직여보려고 들게 되었다. 그게 일부 전직 청와대 비서관들의 권력이었다.
이제 참다운 민주 사회답게 국가 권력이 변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이제 국가 권력도 사법 권력도 국가와 사회를 올바르게 저울질해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서비스고 봉사라야 한다. 다음으로는 나머지 사회의 온갖 힘들과 병존하고 공존해야 한다. 이제 국가의 힘은 경제다. 그건 정치권력보다 윗자리에 앉으면 앉지 내리 앉을 수는 없다.
국가 권력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국가-사회의 힘과 나란히 자리 잡고 앉아야 한다. 아니 스스로 그들 아래에서 굽실거리면서 서비스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는 것이 사회와 국가를 위한 권력이 될 것이다. 아니 무엇보다 국가권력, 정치권력 그 자체를 위해서 경사스럽고 기꺼운 일이 될 것이다.
김열규(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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