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4월 제주도에서 남한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발생하자, 정부는 진압작전을 위해 여수·순천에 주둔하고 있던 제14연대를 10월 19일 제주도로 파견하기로 했다. 그러나 14연대 지창수·김지회 등 좌익계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고 조국통일·인민해방을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무기고와 탄약고를 점령하고 경찰서와 관공서를 장악했다. 그리고 여수·순천을 넘어 광양·구례·남원·고성·하동 지역의 일부까지 그 세력이 확산되었다. 이들은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하고 인민재판을 열어 경찰과 우익인사들을 처형하는 등 무고한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여수·순천 지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광주에 반란토벌사령부를 설치, 소탕작전을 벌였다. 정부군은 미군의 지휘 아래 장갑차 등을 동원해 10월 27일 전역을 탈환하고 반란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2천300여 명이 숨지고 2천800여 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포위망을 벗어난 반란군은 덕유산 등 근처 산으로 도주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했지만 대부분이 소탕되고 계엄령도 해제되었다.
이 사건으로 국군은 대대적인 숙군작업을 실시하여 군 내부에 침투해 있던 좌익세력을 제거하고 군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았다.
▶1405년 창덕궁 완공 ▶1936년 중국 작가 루쉰 사망
정보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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