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입장 바꿔 생각하기

필자가 의사가 되기 전에 병원에서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다. 가까운 친척이 입원을 해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는데, 필자의 눈으로 봐도 환자는 상당히 고통이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텔레비전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처럼 의사나 간호사는 보이지 않고 환자 가족들만 계속 환자 옆을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환자상태가 심하면 의료진이 24시간 환자 옆에서 대기하면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 후 정작 의사가 된 후에는 이 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 지내왔다. 진료와 수술 등 빡빡한 일정에 따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대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병실을 회진하다가 엉덩이 골절을 당해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여 수술 대기하고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해서 무척 당황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하루에 한번 달랑 회진만 오십니까. 치료는 모두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맡겨 놓고, 그나마 전공의 선생님들마저 자주 와 봐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내 병이 잘 나을 턱이 없지요. 교수님이 직접 내 옆을 떠나지 말고 치료해 주세요!"

이 할머니에게 할머니 말고도 필자가 돌봐 드려야 할 분이 많이 있다는 사실과 의료진이 옆에 늘 붙어있다고 해서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설명해드려도 이해하기가 힘드실 것이다. 물론 위급한 상황이나 필요한 순간에 의료진이 환자 옆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의료진도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더 많은 문헌을 검색해 보아야 하고, 환자의 상태나 검사결과를 다른 의사들과 상의도 하고, 때로는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검사실로 직접 뛰어가서 현미경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또한 현대 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므로 어제까지 알고 있었던 치료법이 오늘에는 아무 효과가 없는 치료법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따라서 최근 의학지식에 뒤지지 않기 위하여 세계도처에서 개최되는 학회에도 부지런히 참석해야 한다.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학회에도 무려 2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한나절 학회에 참석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경제 논리로 볼 때에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무리 멀고 힘든 길이라도 새로운 치료법이나 진단법이 나왔다면 기꺼이 배우러 가야 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의학만큼이나 평생공부를 필요로 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치료나 검사법을 개발하기 위해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주력해야 할 때도 있다. 더구나 필자와 같은 외과 의사는 수술을 하기 전에 최상의 몸 컨디션을 가지고 수술에 임해야 한다.

의사도 사람이다. 자신의 몸이 피곤하고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 수술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실수를 하거나 옳지 않은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각 분야별로 더욱 전문화 및 세분화되어 있어 어느 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타 분야의 일이나 사정을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즈음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각 계층 간의 갈등과 충돌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래서 서로 다른 직업이나, 서로 다른 이해집단이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집단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전문가 집단의 집단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급속도로 심화시키며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서로 조금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고,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지녔으면 한다. 그리하여 각자가 우리 사회의 화합과 발전에 도움이 되고, 국민들의 눈에 더 이상 집단 이기주의로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병우(계명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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