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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가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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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이 앙증맞은 두 손으로 창을 두드립니다. 그 노란 잎사귀 하나를 따서 찻잔 위에 띄웁니다. 찻잔 속이 문득 깊고 그윽해지네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가을 한 모금이 지금, 목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헝클어진 일상들과 숱한 사연들이 찻잔 속으로 고요히 가라앉습니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보잘 것 없는 몇 줄의 시, 지극히 세속적인 사랑, 연민과 분노 따위…. 그러나 지금 은행잎의 노란 물감이 찻잔 속에 고즈넉하게 녹아있다는 느낌만으로도 내 작은 방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끊임없이 계절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이 무형의 시간, 신생의 샘물을 끝없이 퍼 올리는 살아 퍼덕이는 시간을 나는 지금 한 잔의 찻잔 속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정말 너무 많은 修辭(수사)들이, 이 아름답고 황량한 가을을 노래합니다. 수많은 시인과 음악 예술가들이 그러합니다. 나 또한 이 그립고 쓸쓸한 계절 앞에 수많은 수사를 붙여야 비로소 이 가을이 완성되는 것처럼 안도합니다.

창 너머 즐비한 노점상 텐트 너머, 헝클어진 전깃줄과 그 위의 어린 새들과 고저장단 삶의 질곡을 정갈하게 담아내는 그릇이 곧 시이고 예술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화려한 말로도 인간은 결국, 자연의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하고 사물의 어느 한 모서리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인간의 언어는 다만, 그들을 굴절시키거나 왜곡시킬 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시인을 꿈꾼다면,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 앞서 간 시인의 노래처럼 문학이, 인생이, 사랑이, 휴지조각처럼 나부끼는 이 시대 골목어귀에서 쓸쓸하게 외투 깃을 세워보십시오.

먼 불빛조차 보이지 않을 때까지 외로움의 끝까지 걸어가 보십시오. 인간의 언어란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만약 당신이 시인을 꿈꾼다면, 아니 불가해한 삶의 미로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면, 모든 것이 증발되고 난 뒤 정신과 육체가 정교한 물방울처럼 가벼워질 때까지 끝없이 걸어보십시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주머니 깊숙이 시린 손을 넣고 바람처럼 찾아오십시오. 노란 은행잎 첨벙 발을 담근 따뜻한 차 한 잔 꼭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새 구두에 달라붙는 흙을 피해가면서 그 얼뜨기 가을은 길을 몰라 한동안 과수원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그때 나는 보았다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 사과의 이마가 발갛게 물드는 것을…(송찬호의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과수원' 중에서).

송종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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