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이정의 독서일기]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 /디 브라운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는 '얼굴 붉은 원주민'들의 성지다. 신비로운 에너지가 솟구치는 땅이라고 해서 많은 명상인과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갔다온 어떤 지인은, "그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라"고 했다. 비록 그 땅을 지키던 '인디언'들은 사라졌지만 '어머니 대지'와 한 몸이라 여겼던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그곳에 깃들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곳에 서면 사람들의 영혼이 그처럼 감응하는 것일 게다.

처음 신대륙에 발을 디딘 '얼굴 흰 사람들'은 그곳을 말로만 듣던 인도인 줄 알고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그 가당치도 않은 이름만큼이나 원주민에 대한 백인들의 무지는 깊었다. 그들은 원주민들을 짐승이나 다름없는 미개인으로 여겼다. 그러나 "인디언도 자기 자식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는 백인이야말로 얼마나 미개했던가!

개척자들은 금광과 석유를 찾아 총성을 울리며 원주민을 몰아내고 말뚝을 박고 나무를 베고 짐승들을 죽이며 철도를 놓았다. 그들을 형제처럼 받아들였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기고 여기저기 쫓겨다녔다. 조상 대대로 살았던 땅에 대한 소유권조차 가질 수 없었던 그들에게는 생존권조차 없었다. 폭력과 배신, 엉터리 약속에 분노한 원주민들은 무기를 들고 끈질기게 저항했다.

19세기 말 정복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인디언들의 구술(口述)을 모아 엮은 이 책은 처절한 피와 생생한 야만의 기록이다. 이 책을 본 백인 정복자들은 미개한 야만인쯤으로 여겼던 인디언들이 이토록 이치 정연하고 단단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에 좀 놀라지 않았을까? 인디언들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겸손의 언어는 정복과 개척을 도전과 용기와 진취적 삶이라고 믿고 있던 백인들의 정신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흔히들 '미국의 개척사를 뒤집으면 인디언 멸망사'가 나온다고 한다. 백인들이 신대륙에 정착한 이후 그들에 의해 희생된 원주민의 수가 5천만 명 이상이라고 하니 분명 그것은 피 비린내나는 '인종 대청소'였다. 스탈린과 히틀러가 자행한 대량 학살은 절대 되풀이해서는 안 될 역사의 비극이라고 지금도 전 인류가 자주 되새기고 있지만, 인디언들에게 저지른 그들의 반(反)인륜적 야만 행위에 대해서는 왜 뼈아픈 반성의 말이 없는 걸까?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 땅을 먹었다." 수우족의 추장 '붉은 구름'의 말이다. 너무나 간결하고 정확한 말이다.

여전히 우리는 그 '땅을 먹는' 개척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땅은 구석구석까지 파헤쳐지고 하늘은 더럽혀져 설산의 청정한 얼음조차 녹아내리고 있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적 근원과의 상호관계를 '영혼의 마음'으로 꿰뚫고 있었던 영성과 평화의 종족 인디언. 이제 그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개척'이 아닌 다른 정신,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평화롭고 조화롭게 사는 길이 있다는 것을 이제 누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자연계의 생생한 직유와 은유로 가득 차 있는 아름다운 '영혼의 언어'를 누가 다시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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