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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조의 수다수다]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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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울보인가요? 이렇게 물으면 아마 대다수의 분들이 '난 아냐'라고 답을 하실겁니다.

그럼 질문을 달리해보겠습니다. 가장 최근에 눈물을 펑펑 쏟아본 적이 언제였나요? 이 질문에 대해서도 아마 기억이 아득하신 분들 많을 겁니다. 특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이 중년의 남성이라면 질문을 받고 한참을 머리 갸웃갸웃해 가며 기억을 더듬어봐도 소리내 눈물을 흘려본 것이 언제적 일인지 떠올리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많이들 울죠. 한밤에 혼자 보초를 서며 외로움에 잠시 눈물을 떨궈보기도 하고,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 뭉클해졌을 겁니다.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감정이 메말라 버린걸까요? 슬픈 영화나 책을 봐도,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가슴속에 한껏 서글픔으로 가득 차도 눈시울이 촉촉히 젖어들긴 하지만 애써 마음 가라앉히고 아닌 척, 태연한 척 하는데 익숙해진 분들이 상당수일 겁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은 스산해지고, 괜시리 바람 한줄기가 가슴속을 휑하니 헤짚어놓고 가지만 쉽게 눈물이 흐르지는 않습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세상살면서 속상한 일이 없어지고, 인생살이가 수월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언제부턴가 '우는 법'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남자의 눈물

하지만 살아가면서 남자가 우는 모습을 보기란 흔한 일이 아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번만 울어야 한다'는 교육의 영향인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압도된 것인지, 남자들은 눈물이 날 법한 상황에 처해도 속으로 삭힐 뿐이다.

강병권(가명'48)씨는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고는 군 제대 후 울어본 기억이 없다."며 "가끔 TV다큐멘터리를 보며 눈시울이 젖긴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 보기 부끄러워 애써 태연한 척 다른 이야기 소재를 찾아내 기분을 전환시킨다."고 했다. 장용상(42)씨는 "우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분명 눈물이 날 법한 상황인데도 코끝만 잠시 찡해올 뿐이라는 것이다. 장 씨는 "우리 사회는 남자가 눈물 흘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 아니냐."며 "나이를 한살 두살 먹으면서 점점 그런 강요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술 한잔 하고 푸념하며 눈물 흘리는 친구를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남자들만의 '강박관념'일 수도 있다. 여자들은 오히려 남자의 울음에 깊은 신뢰를 보인다. 워낙에 '잘 울지 않는 것이 남자'라는 인식이 박혀있고, 남자가 울 때는 거짓 눈물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 6년차 이종인(36'여)씨는 "결혼 후 갈수록 무심해지는 남편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어느날 한참의 싸움 끝에 '나도 노력하지 않는게 아냐. 부족하지만 나 좀 이해해줘'라고 말하며 흘린 남편의 눈물 때문에 그때까지의 서러움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속상한 아내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자신도 변화하려 노력하지만 워낙에 무심한 경상도 남자 기질이 어딜 가겠냐는 남편의 하소연에 거꾸로 이 씨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젠 더 이상 그 문제로 싸우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남자는 안운다? 거짓말!

시와 노래의 소재로 칭송되는 여자의 눈물. 반면 남자의 눈물은 절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으로 금기돼왔다. 하지만 남자라고 눈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남자들에게 참을 것을 강요했고, 어느날부턴가 거기에 익숙해버렸기 때문이다.

마음과마음정신과 김성미 원장은 "4'50대 남자 환자들 중에서는 '속 시원히 한번쯤 울고 싶다'고 요청하는 이들이 꽤 된다."고 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여야 하다보니 마땅히 울 곳이 없다는 이들이다. 그래서 김 원장은 병원에 '울 수 있는 방'을 마련해준다고 했다. 그 곳에서 한참을 울고 나온 남성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이제서야 마음이 후련해졌다"는 것. 멍석을 깔아주면 남자라고 해서 눈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됐다. 지난 7월 방송됐던 SBS스페셜 '신비의 묘약, 눈물'편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모아 놓고 최면을 걸어 슬픈 기억을 떠올리도록 하자 여성들의 대부분은 펑펑 눈물을 쏟았지만, 남자 실험참가자 중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남성들만 따로 한 방에 모아놓고 똑같은 최면을 걸었다. 그랬더니 상당수의 남성들이 뺨 위로 주루룩 눈물을 흘려냈다. 결국 '남의 이목' 탓에 눈물을 애써 감춘다는 것이 실험으로 드러난 것이다.

▷남자도 울어보자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신비의 묘약'이라고 한다. 눈물을 흘리는 행위를 통해 체내에 쌓여있는 나쁜 기운들을 밖으로 배출해내기도 하고,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 눈물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짧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쯤되면 "우는 것이 몸과 마음에 좋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덤덤해진 감성을 굳이 자극해 눈물을 흘릴 필요가 있을까? 울며 살기보단 웃으면서 사는게 훨씬 정신건강에 좋은게 아닐까?"라는 궁금증이 생길법하다.

최태진 원장(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누구나 굴곡없는 삶은 없다."며 "웃고만 살겠다고 다짐처럼 말하는 사람은 속으로 상당히 많은 감정들을 억압하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눈물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성미 원장 역시 "웃어서 해소될 수 있는 감정과, 울어서 해소될 수 있는 감정은 확연히 다르다."며 "슬프고, 허전하고, 상실감을 느낄때는 거기에 맞는 액션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울어야 할까? 김 원장은 "술을 마시고 우는 것은 감정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며 "평소 눈물이 없는 중년의 남성이라면 퇴행할 수 있는 상대, 나약하고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도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나 연장자 앞에서 위안을 받으며 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그럴 수 없다면 영화를 본다거나, 슬픈 감정에 몰입하는 행위를 통해 눈물을 흘리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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