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 맞았다더니 맛만 좋네요."
"우와! 이렇게 굵은 사과가 500원밖에 안 해요?"
11일 오후 대구 달서구 용산동 성서하나로클럽. 농산물 매장이 수십 명의 주부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비집고 들어가 보니 빨간 사과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만든 '보조개사과'. 지난여름 경북 북부지역을 강타한 우박에 피해를 입은 사과들이 지난 9일 대구시민들에게 첫선을 보인 뒤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판매장 앞 시식코너를 가득 메운 주부들은 조금이라도 더 맛을 보려고 이리 밀치고 저리 밀쳤다. 주부 김명희(58·달서구 이곡동) 씨는 "생각한 것보다 맛도 좋고, 무엇보다 값이 싸서 좋다."며 "사과에 흠집이 조금 있지만 선물할 거도 아니고 가족이 먹을 테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김 씨는 사과 40여 개를 꾸역꾸역 비닐봉지 속으로 밀어넣다가 봉지가 터지자 아예 한 상자를 사갔다.
우박에 맞아 사과 이름을 '보조개사과'로 지었지만 살짝 곰보에 불과한 우박사과는 이날 반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시식코너에 깎아놓은 사과의 속살은 정상 사과와 다름없이 희고, 맛과 향기는 시련을 이겨낸 까닭에 더욱 진했다.
"사과 한 개에 1천 원 이상 하는 요즘 절반 가격에 사과를 먹을 수 있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 우박 때문에 우리 농민들이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싼값에 사과를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농민들은 한 시름 덜 수 있어서 좋잖아요."
도숙희(48) 씨는 "처음엔 우박 맞은 사과라고 해서 구멍자국도 크고 맛도 형편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정상 사과와 다를 게 없고 오히려 가격이 너무 싸서 좋다."고 했다.
주부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날 준비한 우박사과 15kg들이 50상자 중 절반가량이 행사 시작 5시간 만에 팔려나갔다. 판매원들은 채우면 금세 비워지는 판매대에 새 사과를 채워넣고 사과를 깎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판매대 김분행 씨는 "사실 정상 사과의 절반값에 팔고 있지만 이렇게 인기가 높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며 "오히려 옆에 차려놓은 정상 사과 코너가 썰렁해 걱정된다."고 말했다.
성서하나로클럽 김영형 농산물 팀장은 "원래 계획은 9일부터 12월 11일까지 우박사과 특판행사를 열려고 했는데 지금 같은 추세라면 이달 말쯤이면 목표량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우박으로 실의에 빠져있는 우리 농민들이 다시 웃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이 동참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의성에서 사과농사를 하고 있다는 한 주부는 "다행히 우리 고향은 올여름 우박이 비껴갔지만 우박사과를 보면서 아버지가 흘렸을 땀과 눈물을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겉보다 속이 알찬 것이 중요하잖아요. 우박사과를 보니 속이 알차 맛도 좋은 것 같아요. 우박사과가 우리에게는 건강을 주고 농민들에게는 웃음을 선물할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 뿌듯합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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