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 공양
김용락
영천 사는 이중기 시인이 세 번째 시집을 냈다고
흑염소를 잡아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20대 광풍노도를 함께 보냈다는
부산의 최영철 시인도 부인이 운전하는 티코를 타고
영천에 왔다
앞마당에 양은 백솥을 걸어놓고
염소를 삶는 장작불 앞에 앉아서 최 아무개 시인이 말했다
착한 염소를 배에 묻어야지 어떻게 땅에 묻노?
가난한 시인들의 밥이 되기 위해 기꺼이 순교한
염소의 사망을 그런 식으로 문상할 때
갑자기 그가 시인으로 보였다
그래 염소를 더러운 인간들이 먹어치워야지
어떻게 땅에 묻노?
누군가의 먹이 감이 된다는 것은
살아서 최대의 공양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의 어깨 너머로 薄暮(박모)에 젖어드는
노란 무꽃이 환하게 등을 켜고 있었다
맞다. 착한 염소는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 새도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 물고기를 땅에 묻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착한 것들은 모두 땅에 묻으면 안 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기러기, 청둥오리, 오소리, 돌고래 따위 예쁜 것들을 땅에 묻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하늘에나 바다에 묻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사람의 배에 묻는다. 하도 많은 걸 묻어서 사람의 배가 포화상태가 되지 않을까 혹여 걱정 마시라. 시방세계를 두루 삼켜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게 사람의 배이거니.
그런데 시인이여. 염소의 순교를 받을 만큼 시인이 소중한 존재일까요. 수성방천에 널린 돌멩이보다 더 많은 이 시대의 시인. 시인다운 시인은 눈 닦고 둘러봐도 찾을 수 없으니. 흑염소의 공양을 받고서라도 제대로 살아야하리. 교육자로, 정치가로, 출판가로, 사회운동가로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아가는 인정스런 김용락 시인처럼.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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