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시무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작년에 공적이 많았던 아홉 분께 최소 1억 원씩 상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님부터 앞으로 나오십시오." 월급쟁이들의 백일몽 속 풍경이 아니다. LG필립스LCD라는 회사에서 지난 2일 실제 일어난 일이다.
공적이 얼마나 컸기에 한 재산을 뭉텅 떼 줬을까? 일면 놀랍고 부럽지만, 그래서 저랬겠구나 짐작이 가는 바는 있었다.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 탁월한 아이디어를 냈으리라는 게 그것이다.
통찰력과 영감이 하나 된, 그렇게 소중한 톡톡 튀는 감각을 우리가 일상에서 간혹 접하게 되는 것은 아마 언어를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말에는 '騎墻主義(기장주의)'라는 것도 있다. 노신평전에서 용례를 본 기억이 있는 이 말은 '담장을 탄다'는 본래의 뜻에서 '양다리 걸친다'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서 그 비겁함을 야유하는 통쾌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허영마케팅'이란 말은 비싸야 잘 팔리는 상식 밖의 현상에 주목한 장사 기법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3천600만 원에 들여온 외제차는 국내에서 7천만 원, 미국에서 5천700만 원 하는 차는 1억 1천만 원에 팔아야 잘 팔리더라는 얘기이다. 이것 역시 비아냥거림의 감을 주는 造語(조어)이나, 그렇게 비쌀수록 잘 팔리는 물건에는 이미 100년 전부터 '베블런 재화'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기도 하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슈렉 걸음' '낙타 포즈' 같은 것은 근래에 재미있게 들었던 단어들이다. 꼿꼿하게 걷는 '마사이 워킹'에 대칭해,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구부정하게 걷는 것을 '슈렉 걸음'이라 한다고 했다. 반면 뒤로 젖힌 양 턱을 15도쯤 치켜들고 걷는 카다피 대통령식 걸음은 '낙타 포즈'라 했다. 거만스러움에 대한 거부감이 깔린 듯했다. 기발하지 않은가.
대통령직인수위가 어느 행정부처에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이 돌았을 때 누군가가 다시 꺼낸 게 '낙타 포즈'였다.
심히 수구적인 사람인데도 그는 인수위에 대해 화를 냈다. "그렇다면 지금 정권이나 다음 정권이나 뭣이 다르냐"고 분을 터뜨린 것이다.
한나라당까지 나서서 절제를 주문했다 하니 달라질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낙타 포즈'는 점령군에게나 어울릴 자세가 아닐까 싶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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