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못이 제 나이조차 늘 잊고 사는 듯해
빗방울, 골 바람이 애써 테를 새겨 주지만
까짓것
부질없다며
짐짓 지워온, 千秋(천추).
또 한 편의, 웅숭깊은 관조의 세계를 만납니다.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시각에 저절로 테가 생긴 느낌인데요. 이미 潭心(담심)에 닿은 자적의 여유가 수면에 뜬 나이테를 스스럼없이 지워갑니다.
'까짓것/부질없다며' 나이조차 잊고 사는, 그게 바로 자연의 몸짓 아니던가요? 그런 무심함이 종장의 '짐짓 지워온, 千秋(천추)'에서 뭔가 출렁, 하는 감동의 물너울을 만듭니다.
한 덩이 흙반죽으로 꾸밈없는 형상을 빚어서는 대꼬챙이로 팍, 숨구멍을 뚫어 놓은 신라 토우처럼, 언어의 형용을 짓되 이미 그 형용은 없습니다. 다만 몇 군데 상념의 곁가지를 쳐낸 칼자국만 남았을 뿐.
빗방울, 골바람이 느닷없는 생명의 기척이라면, 천추는 곧 적멸의 고요인 것. 고요도 생명이거늘, 예다 뭔 말을 더 붙여요? 더 붙일 말이 없습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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