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겨울바다

바다, 그 너머에 삶의 열기가 있다

동해안 바닷바람이 어느 때보다 매서운 기세로 땅을 향해 부는 가운데 전국을 영하의 한파로 끌어내린 동장군의 입김이 낮게 깔린 오전, 움츠려 드는 한기에 옷깃을 한껏 여미며 포항시 죽도시장을 찾았다.

시장 안은 조금 전 바깥의 바닷가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추위로 총총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과는 딴 세상인양 시장 안은 삶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옷깃을 잡아끄는 난전 아줌마들의 투박한 손길을 피해 시끌벅적한 흥정소음과 비릿한 생선냄새가 발길을 이끄는 시장 안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가 봤다.

과메기 익어가는 덕장

구룡포읍 병포리 앞바다. 제철 맞은 겨울진미인 과메기 건조작업이 한창이다. 대가리와 뼈, 내장을 추려내고 꼬리까지 두 쪽을 가른 꽁치 살을 껍질 째 걸어 말리는 과메기 덕장은 이 맘 때면 구룡포에서 북쪽 영일만 호미곶까지 해안가 어촌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

두 단으로 된 걸개에 걸린 꽁치사이로 차가운 해풍과 겨울햇살이 번갈아 스쳐 지나가면 과메기는 사나흘 만에 얼었다 녹았다를 거듭하며 꾸덕꾸덕한 제 맛을 낸다. 덕장에서 만난 몽골 아줌마는 우리네 어촌마을 여느 아낙네 솜씨 못지않게 익숙한 손놀림으로 과메기를 손질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친숙함이 느껴진다.

이런 갯마을 풍경에 취해 느릿느릿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다보면 구룡포 항이다.

동장군도 울고 갈 뜨거운 생활전선

뭍에선 좀체 보기 힘든 매운탕 거리인 홀데기(홍치)와 곰치가 허연 배를 드러내 놓은 시장 입구 좌판에서 수산시장의 진풍경은 시작된다.

싱싱하고 윤기 나는 대게는 집게발을 버둥거리며 얼음 깔린 진열대 위에 나란히 줄을 서 있다. 한파에 완전무장한 상인은 대게 5마리 한 줄에 한 마리를 더 얹으며 "3만원"을 외치는 간이 천막 옆에선 어린아이 키 만 한 문어를 삶는 가마솥이 연신 김을 뿜어대고 있다.

이에 질세라 새벽경매로 늦은 아침을 먹던 억척 아줌마가 퍼덕거리는 오징어와 우럭을 뜰채로 뜨며 "1kg에 만원. 싸다 싸! 사가 가이소"라며 투박한 사투리로 흥정을 붙는다. 그 사이 오징어 몇 마리는 좌판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며 고개를 삐죽거리고 맞은편에선 흥정을 끝낸 고객과 상인이 덤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그 한편에선 또 열심히 회 썰기에 몰두하고 있는 아줌마의 아침식사가 식어가고 있지만 추위는 아랑 곳 없다.

눈 코 뜰 새 없는 수산코너를 돌아 죽도시장 명물인 회 타운에 접어들자 우럭, 광어, 오징어에 고레치, 홍치, 메치 등 잡어까지 싱싱한 활어들이 수족관을 꽉 채우고 있다. 상인들도 저마다 활어를 들어 보이며 손님 유치에 경쟁적이다. 작은 관심에도 곧장 손을 잡아끌기 때문에 곁눈질로 짐짓 다른 곳을 보며 둘러보는 것이 회 타운 구경의 요령인 것 같다.

죽도시장을 벗어나는 지점엔 겨울진미 과메기 상점이 자리한다. 잘 손질된 포장상품(1두릅기준)이 1만원 선. 여기에 채소랑 미역, 초고추장이 갖춰진 세트상품은 1만6천~1만8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시장을 빠져나오는 찰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려 시장 안으로 들자 조금 전 들었던 활기찬 호객소리가 다시 메아리친다.

구룡포의 명물 철규분식

구룡포 먹을거리 명물 중 또 하나는 구룡포 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철규분식'. 50년 전통의 이 허름한 집은 찐빵과 단팥죽이 명물이다.

둥글납작한 찐빵을 하얀 설탕에 푹 찍어 먹는 맛은 50~60년대 시장에서 먹던 그 맛이다. 달착지근한 단팥죽도 요즘을 구경하기 힘든 추억의 맛을 선사한다.(054-276-3215)

929번 해안도로 드라이브

거센 해풍을 견디려는 듯 한껏 몸을 낮춘 해안가 어촌 마을의 정경, 크고 작은 포구의 풍경, 찬바람에도 꿋꿋하게 푸름을 뽐내는 해송 숲은 929번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할 때 볼 수 있는 겨울장관들이다. 이 뿐 아니라 차창너머 푸른빛이 선명한 동해의 짙푸른 바다가 한없이 펼쳐져 운전하는 내내 청정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구룡포읍 석병리에 있는 '한반도 동쪽 땅끝 마을'이란 표지석을 너머 너른 암석이 깔려 있어 바다와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맑은 겨울바다물 속에서는 암초에 꼭 달라붙어 자라고 있는 해초들이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손짓을 하고 있다. 그 싱그러운 생명력은 보고만 있어도 좋다.

아쉬운 대로 길을 재촉하면 이번엔 호미곶 해맞이 공원과 국립등대박물관에 들러 볼 수도 있다. 바다와 땅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상생의 손 조각물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포항까지 왔다면 이명박 당선자 고향마을도~

이명박 당선자의 한달은 국민의 관심과 기대감의 한달이었다. 당선자의 고향마을 역시 그의 행보만큼 주목받고있다. '제17대 대통령 당선인 고향마을'이란 팻말이 선 마을 어귀. 임시로 마련된 듯한 주차장엔 평일인데도 고급 승용차와 대형버스가 수십 대가 주차해 있고 길의 한 귀퉁이에는 컨테이너형 이동식 화장실까지 설치돼 있다. 그 길을 따라 당선자의 고향을 보러 온 많은 외지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마을에 들거나 혹은 빠져나오고 있다.

총 23가구에 주민 60여명이 사는 덕실마을은 이 당선자의 고향마을로 알려지면서 요즘 평일 200~300여명, 주말 1천여 명이 넘는 외지인들을 맞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초로의 마을주민은 "조용하던 마을이 지난해 말부터 바깥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덕실마을은 안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마치 얕은 산들로 둘러싸인 호로병 가운데 자리한 것처럼 보인다. 이 당선자의 고향집은 마을 끝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파란 청기와에 단층인 고향집 마당에는 이 당선자의 살아온 경력과 형 이상득 의원 그리고 친인척과 함께 찍은 사진, 학창시절 모습, 선산에서의 묘소 참배 사진 등이 전시돼 있어 이 곳을 찾은 외지인들에게 그의 일대기를 쉽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안강에서 온 김홍순(여'61) 씨는"공약한 대로 모두 실천해서 경제를 살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당선자의 고향집을 찾았다"면서 "꼭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진주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신귀선(여'50) 씨는 "이 당선자가 대통령에 뽑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마치 한동안 국가적 영도력의 부재와 경제적 어려움에 짓눌려 있던 국민의 마음이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으로 희망에 부푼 모습으로 바뀐 대표적 현장이 덕실마을인 것 같다. 그래서 인지 고향집 방명록엔 방문객들이 앞 다퉈 이름을 남기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녀회원 정춘선(48) 씨는 "어른들 말씀을 빌리면 우리 마을에서는 들에 불이 나도 저절로 바람이 멈추고 불이 꺼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 이유로는 마을이 지리적으로 덕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그 때문인지 예로부터 예와 덕을 중시하는 충절의 고장이자 덕 있는 사람들이 산다는 의미에서 덕실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이 당선자의 11대조가 입향해 터전을 잡으면서 인연이 맺어졌다. 이 당선자는 유년시절 이 마을에서 약 2년 정도 살았다.

해방이후 네 살 때 일본에서 부모(부친 이충우 씨 81년 작고'모친 채태원 씨 64년 작고)를 따라 덕실마을에 온 이 당선자는 여기서 여섯 살까지 살다가 당시 포항읍내로 이사했다.

덕실마을은 흥해읍을 통과,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 곡강교를 지나자마자 왼편에 난 2차선 작은 도로를 따라 가면 마을입구에 닿는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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