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물동 범일중학교의 발명교실. 한쪽 면엔 각종 공구들이 줄지어 걸려있고 다른 쪽 벽에는 밀링머신과 선반, 드릴링머신 등 공작기계들이 배치돼 마치 공장 작업장을 방불케 한다.
교실 한쪽 탁자엔 5명의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날 열리는 '학부모 발명교실'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 잠시 뒤 고영문(47) 담당 교사가 수업 시작을 알린다. "오늘 처음 만들어 볼 작품은 탄성구슬그네입니다." 탄성구슬그네는 5개의 구슬을 나란히 줄로 이어 한쪽 구슬을 튕기면 반대쪽 구슬이 튕기는 실험기구로 운동량보존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고 교사는 "보통 소리나 마찰이 없다면 영원히 움직이겠지만 현실에선 어렵다"며 "하지만 직접 만들어보면서 운동량이 어떻게 보존되는지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작이 시작되자 엄마들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접착기구인 글루건도 낯설고 실험기구를 만드는 것도 어색하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하다.
발명교실에 참여하게 된 엄마들의 동기는 다양했다. 정호순(44·대구 수성구 범어4동)씨는 "과학을 무척 좋아하는 우리 아이가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신청을 했다"며 "막상 1주일 전에 발명에 대한 이론수업을 들으니까 정말 재미있었다"고 웃었다. 백은화(39·대구 수성구 이천동)씨는 "평소 발명에 대한 관심은 많았는데 기회를 찾지 못하다 지난달 학교 행사에서 발명교실 이야기를 듣고 바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조금씩 완성돼가는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학교 과학행사는 물론,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과학연구원이나 대구어린이회관을 찾는다는 백옥희(38·대구 수성구 이천동)씨. 그는 "예전에 엑스코에서 탄성구슬그네 만드는 행사가 있었는데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못했다"며 "이번에 그런 아쉬움을 달래 정말 기쁘다"고 했다. 30여분이 지나자 완성된 탄성구슬그네. 엄마들은 구슬을 튕기면서 뿌듯함에 미소가 가득하다.
다음은 '하노이탑' 제작시간. 하노이탑은 원반들을 한쪽 기둥에서 맨 반대쪽 기둥으로 옮기는 놀이기구. 단 큰 원반이 작은 원반 위에 올라갈 수 없고 하나씩만 옮길 수 있다는 법칙이 있다. "가장 적은 횟수로 옮기면 이기는 게임으로 최소 횟수는 2ⁿ-1가 나와야 합니다."
담당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들은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시작한다. "칼로 긁어야 돼요" "조심하세요" 등등. 엄마들은 이날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벌써 친해져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토닥토닥.' 나무막대를 자르고 원형카터기로 EVA폼(우레탄판)을 자르는 등 작업이 한창 진행된다. 엄마들은 원반 가운데에 구멍을 내기 위해 드릴머신도 처음 만져본다. 회전톱이 '와르르' 소리를 내자 무서운 표정이 역력하다. 드릴머신을 처음 써 본다는 신언미(38·대구 수성구 이천동)씨는 "겁이 나지만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다"고 한마디 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하노이탑이 완성되자 원반을 움직여보는 등 소녀처럼 들떠 '수다'를 떤다. "무엇이든 직접 해봐야 돼요, 하하하."
예정된 2시간이 지났는데도 고 교사는 욕심을 낸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고리비행기'를 만들어보자는 것. 고 교사는 "보통 비행기 하면 종이비행기를 생각하지만 고리비행기는 만들기도 훨씬 쉽고 더 잘 날라간다"며 "아이들에게 만들어주면 하루종일 날릴 것"이라고 소개했다. 엄마들은 담당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금세 고리비행기를 만들어냈다. 이제 만들기에 어느 정도 손이 익은 듯하다. 엄마들은 제각각 완성된 고리비행기 날리기에 푹 빠졌다. 교실은 어느새 놀이터가 된 느낌. 엄마들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워 박수도 치고 깔깔깔 웃었다.
장명화(47·대구 수성구 지산1동)씨는 "이번 교실 참가를 통해 발명이나 창의력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이들에게 평소 지나치던 사물도 좀 더 자세하게 보고 생각해보도록 말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 교사는 "발명은 절대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며 그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발명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며 "많은 학부모들이 참석해 자녀들에게 발명과 창의력을 일깨워 주는 계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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