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가를 이루다]양봉 42년 박 명 우 회장

"칠곡의 헛개나무꿀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야죠"

"사람들은 보통 꿀과 같은 생산물로 꿀벌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만 알고보면 꿀벌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존재이지요. 꿀벌이 꽃과 꽃사이를 오가며 화분매개를 하지 않는다면 식물이 자랄 수 없고, 식물이 없다면 그것을 먹고사는 동물도 결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 박사 등 과학자들은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생태계 교란으로 4년안에 인류가 멸망한다는 전망도 내놓았어요."

지난 14일 칠곡군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양봉산업 발전을 위한 간담회'에서 만난 박명우(66) 칠곡군양봉연구회 회장은 꿀벌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농무성 발표에 따르면 농작물의 수분(受粉) 역할로 인한 수확량 확대, 자연생태계 유지 등 꿀벌의 공익적 가치는 벌꿀 생산량의 148배에 이른다는 것. 우리나라의 벌꿀 시장이 4천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꿀벌의 공익적 가치는 40조원을 훌쩍 넘는다는 게 박 회장의 지론이다.

42년 동안 칠곡에서 양봉을 해온 박 회장은 칠곡이 전국 최대의 벌꿀 생산지가 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주인공. 봉우회와 그 후신인 양봉연구회 회장을 맡아 농가에 자신이 터득한 양봉기술을 보급하는 한편 지난 7월 칠곡군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양봉특구로 지정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지난 해에는 양봉인 가운데 최초로 신지식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군에서 제대한 1960년대 중반 무렵 '열심히 땀을 흘리면 성과를 거두지 않겠느냐'는 마음에서 농촌에서 살기로 결심했지요. 닭도 키워보고 여러가지를 시도해봤지만 양봉을 접한 후 제 성격에 맞는 것 같아 66년부터 본격적으로 꿀벌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첫해에 꿀벌 두 통으로 시작해 꿀을 따지 않고 그 다음해에 통을 나누는 분봉을 해 다섯 통으로 늘렸습니다. 그 해에 꿀을 수확했는데 소줏병으로 35병이나 되는 꿀을 땄지요. 귀하디 귀한 꿀을 기대 이상으로 수확하고보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지요."

그 당시 칠곡에는 양봉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박 회장은 대구 동아양봉원에서 펴내는 월간 '양봉계' 등 책을 보며 양봉기술을 터득해 나갔다. 밤낮이 없는 양봉기술 연구에다 꾸준한 노력 덕분에 별다른 실패없이 지금은 벌통이 350개에 이르는 양봉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 정도면 전국에서 톱 클래스 안에 들 정도로 양봉 규모가 큰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꿀벌에 쏘여 겨드랑이가 퉁퉁 붓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꿀의 원천이 되는 아카시아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꿀 수확량이 크게 줄어드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어요. 지금은 꿀벌에 쏘여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꿀벌과 하나가 됐습니다."

벌통을 나누는 분봉기술에서 독보적인 노하우를 갖고 있는 박 회장은 개인적 성공보다는 꿀벌참외 등 새로운 기술을 개발, 농가에 보급한 것이 가장 보람이 있다고 귀띔했다. 2,3년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그는 95년 '꿀벌참외'를 세상에 선보였다. "뜨거운 열기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참외를 일일이 인공수정시키는 일이 너무 힘들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꿀벌참외를 연구하게 됐지요." 참외농사와 양봉을 겸하던 박 회장은 벌들이 꽃을 날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수정시키는 것을 하우스 내 참외수정에 접목시키기로 착안하고 연구에 매달렸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에 기술자문을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하우스 내에는 기온이 너무 높아 벌이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패할 각오하고 94년 첫 시도를 했지요. 하우스에 벌통을 넣고 일주일 동안 살펴보니 가능성이 엿보였어요. 이듬해 본격적으로 시도해 꿀벌로 자연수정한 참외 2상자를 수확해 칠곡군농업기술센터에 선보였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인공수정한 참외에 비해 꿀벌참외는 맛이 아삭아삭한데다 당도가 높고 저장성이 월등히 높았다. '칠곡 꿀벌참외'란 상표를 달고 서울 등지에 출하한 결과 보통참외 시세보다 1.5배를 받는 등 성공을 거뒀다. 그 이후 칠곡은 물론 성주 등지에 꿀벌참외가 보급돼 농민들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세월 동안 꿀벌과 함께 해온 박 회장은 꿀벌에게 배울 것이 참 많다고 했다. "2만~3만 가량되는 벌 한통에는 여왕벌 한마리와 수백에서 수천 정도되는 숫벌, 그리고 일벌이 함께 살지요. 벌마다 하는 일이 철저하게 분업화돼 있고 놀고 먹는 놈이 없어요. 사람들이 일하는 공사장 경우 일을 하지 않고 감독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벌은 모두가 자기 맡은 일에 열심이지요. 또 말벌과 같은 외적이 침입했을 경우엔 목숨을 바치며 싸우는 등 충성과 희생 정신도 뛰어나지요. 추운 겨울에는 벌들이 공처럼 뭉쳐 있는데 추운 바깥쪽과 따뜻한 안쪽에 있던 벌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꾸며 체온을 유지해요. 분봉을 하는 것도 여왕벌이 결정하지 않고 숫자가 많은 일벌이 결정할 정도로 민주적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꿀벌처럼 우리 인간들도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 회장은 칠곡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인 벌꿀 생산지로 만드는 것이 일생의 목표다. 헛개나무를 많이 심어 여기에서 따는 헛개나무꿀로 칠곡의 벌꿀을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것. "뉴질랜드 마누크꿀 경우 약리효과가 있어 명품꿀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지요. 우리 칠곡도 그에 못지 않은 꿀을 생산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박 회장은 "수년전부터 칠곡의 최대 밀원이 되는 아카시아가 알수 없는 원인으로 말라죽고 있다"며 "헛개나무로 밀원을 바꾸는 작업을 통해 아카시아와 헛개나무 꿀을 동시에 생산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양봉산업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어요.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칠곡이 세계적인 양봉산업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저는 물론 칠곡의 양봉인 모두가 끈질기게 노력하겠습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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