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베이징 우커성 야구장에서 열린 미국 대 일본전은 여러모로 구미가 당기는 경기였다. 패한 팀은 조 4위로 조 1위인 한국과, 승리한 팀은 조 3위로 조 2위인 쿠바와의 4강 대진이 이미 확정되어 있는 경기였지만 한국팀으로서는 이 경기가 갖는 의미가 특별했다.
경기를 앞두고 아마 야구 세계 최강으로 이미 올림픽을 세 차례나 제패한 쿠바보다는 오히려 한국이 더 상대하기 쉽다는 분석이 나오던 터였다. 이 경기를 버리면 한국을 선택할 수 있는 만큼 결과도 결과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와 경기 내용, 현장 분위기는 그만큼 중요했다.
그러나 한국을 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양 팀은 이날 연장 11회까지 3시간 16분 동안 이어진 경기 내내 총력전을 펼쳤다. 실점 고비를 넘길 때마다 양 팀 더그아웃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고 양 팀 감독은 주심의 서투른 경기운영이나 판정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그라운드로 나와 항의하는 등 승부에 집착했다.
연장 11회 초 승부치기에서 4점을 연달아 올린 미국 선수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기쁨을 나눴다. 반면 일본이 자랑하는 마무리 투수 이와세 히토시는 난타를 당하자 멀리서 봐도 금방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일본은 그러나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2점을 따라붙은 11회 말 2사 만루의 찬스가 계속되자 한방을 갖춘 아베를 대타로 기용하며 역전의 기대를 놓지 않았다.
기용된 투수의 면면을 보더라도 승리하겠다는 양팀 감독의 의지를 잘 읽을 수 있었다. 일본은 다르빗슈 유-다나카 마사히로-가와카미 겐신-이와세, 미국은 트레버 캐힐-제레미 커밍스-브라이언 두엔싱-블래인 닐-제프 스티븐스 등 수준급 투수를 총 투입해 숨막히는 투수전을 펼쳤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한국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내심 일본이 승리해 한국이 미국과 준결승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데다 한·일전이 갖는 특유의 부담감, 그리고 세밀하고 치밀한 '스몰볼'을 지향하는 일본 야구가 장타에 의존하는 미국보다는 더욱 까다로울 수 있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일본의 호시노 감독은 미국전 패배 후 한국과 준결승을 펼치게 된 데 대해 "어디까지나 부담감은 양쪽 모두에 있다. 오직 승부에만 집중해 한국과 멋진 경기를 펼치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을 향해 떠나는 그는 일본팬들의 인사를 받지도 않은 채 잔뜩 찌푸린 얼굴로 패배에 대한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당한 패배의 후유증에다 10회까지 3안타의 빈공에 허덕인 타선, 그리고 총력전을 펼친 투수진의 소모 등 일본이 미국전에서 당한 상처는 크다. 그렇다면 준결승에서 일본을 맞이하는 한국의 자세는 분명해졌다. 4승 3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4강에 턱걸이한 팀인데다 예선에서도 한번 꺾었던 상대인 만큼 조 1위팀답게 담담하고 자신감 있게 4위팀을 맞이하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노정현기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