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예년 같으면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을 텐데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너무 어려운 한해를 보내서 그런지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차례 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덜하다고는 해도 향후의 암울한 전망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지만 새해에는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우선 새해 새날이란 말의 어감이 주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새'에 들어있는 새롭다.산뜻하다.깨끗하다.생생하다.처음.맑음 등의 뜻이 정겹게 느껴지고 왠지 모르게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해의 신년 화두는 '위기, 특히 경제위기 극복'이다. 그런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지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감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늘 강조되어 왔던 국정운영의 기본이다. 서양의 그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면 우리의 그것은 淸白精神(청백정신)이다.
전통적으로 청백정신은 착한 심성을 잃지 않는 것,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는 것, 물욕에 찌들지 않는 것, 가난을 감수하고 도를 즐기는 것, 내 마음에 비춰서 남을 헤아리는 것, 살리기를 좋아하는 것 등으로 표출되었다.
이 청백정신을 누구보다 강조한 사람이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이다. 그는 『牧民心書(목민심서)』에서 청렴이야말로 '모든 선의 원천(萬善之源)', '모든 덕의 근본(諸德之根)'이라고 했다. 그리고 청렴이 관리들에게 유익한 자산이며,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라고 묘사했다. 청렴은 수지맞는 장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하다(大貪必廉)'라고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각 언론매체에는 권력에 기대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의 기사가 유난히 많았다. 정권이 바뀐 해라고는 해도 이 정도면 현재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원인 중 하나가 어디에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청렴을 천하의 큰 장사'로 본 다산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다. 정말 큰 탐욕을 부리고 싶었으면 청렴해야 했다. 청렴에 대한 평가와 명성이야말로 그 사람의 영전과 승진을 보장했을 터이니 말이다.
올해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런 비리 기사가 언론에 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옛 속담에도 "官淸民自安(관청민자안)"이란 말이 있다. 관리가 청렴하다면 백성은 저절로 평안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편안하기 위해서도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청렴해야 한다.
청백정신에서 청렴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勤勉(근면)이라고 하는 요소도 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정에 임하는 자세와 능력을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청백리란 작고한 사람들에 대한 호칭이고, 산사람에 대해서는 보통 廉勤吏(염근리)라고 불렀다. 전통사회에서 염근리로 선발된 사람은 승진이나 보직에 특혜를 받았고 가문을 빛내는 일이기도 했다. 이는 품성뿐만 아니라 실제 행정 능력까지도 중시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권의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여야 최종 협상이 결렬되면서 국회 파행 사태는 해를 넘기고 말았다. 또한 이런 사태 속에서 나온 정치인들의 말은 언론에서조차 개그 수준으로 폄하될 정도다. 이를 보면서 루쉰이 『아Q정전』에서 그 무렵 중국이 빠져 있던 자기 기만을 생생하게 표현했던 구절을 되새겨 본다. "그는 오른손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힘껏 연달아 두 번 때렸다. 때린 사람은 자신이고, 맞은 쪽은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뒤에는 또 왠지 자기가 다른 사람을 때린 것 같아……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자랑스럽게 벌렁 뒤로 누웠다."
새해를 맞아 우리의 소박한 기대와 희망이 올 한 해에는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오노레드 발자크의 말처럼 '인간의 마음은 애정의 극한까지 오르면 잠시 휴식을 취하지만, 증오심의 절벽으로 굴러떨어질 때는 좀처럼 멎지 않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국정 운영자 모두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상호(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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