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의 국회는 문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끌어내고 끌려나가는 일그러진 얼굴들이 연일 TV 화면을 채웠다. 그 혼란상이 여야 합의에 따라 수습된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당 원내 대표가 '법안 전쟁'이라고 이름붙인 이번 사태는 9일부터 시작된 임시국회에서 2회전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가지 평가가 뒤따른다. 이쪽이 잘못이라는 평가도 있고 저쪽이 잘못이라는 평가도 있다. 항상 그렇듯이 둘 다 잘못이라는 양비론도 빠지지 않는다. 여야의 득실을 따지는 분석이 이어지고 여러 정치세력의 갈등상이라는 '후폭풍'도 전해진다. 보고 있노라면 짜증도 난다. 그래서 '국회의원들 다 쫓아내고, 국회 문 닫아 버려라'라는 시정의 성난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아무리 짜증이 나더라도 국회의원과 국회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사태의 원인을 되짚어 재발을 막는 수밖에 없다.
원인의 하나는 다수결의 왜곡이다. 이번 사태에서 특히 문제가 된 방송법안에 대해, 야당측은 법안 자체에 문제가 있고 충분히 논의도 되지 않았고 반대도 많다고 비판했다. 재벌과 대형 신문이 방송까지 장악하게 될 경우 다양한 목소리가 차단되게 될 것이고, 법안이 발의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가운데 상임위 심의도 옳게 거치지 않아 논의가 부족하며, 여론조사의 결과도 반대가 찬성보다 2배 이상 많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여당측은 이렇다 할 반론은 제시하지 않은 채, 172석이라는 절대 다수의석만을 내세워 무려 85개의 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을 밀어붙였다. 여론조사도 공청회도 하지 않고, '전광석화' 같이 '돌격'해서 '고지'를 '점령'하는 '속도전'에만 매달렸다.
다수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도달한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원리'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저 숫자의 '폭력'에 머물 뿐이다.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은 법의 왜곡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는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이 요건을 갖춘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지만, 왜곡의 백미는 역시 국회 사무총장이라는 자가 "특수주거침입"이라는 죄명을 들먹인 것이다. 국회 안에 있던 야당 의원과 보좌진이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사람의 주거" 등을 침입한 범죄자라며, 경찰을 증원 요청해 국회 출입문 앞에 세워놓고 음식물 반입까지 제한하며 강제해산에 나선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부부싸움이 난 아파트에 완장 찬 관리인이 나타나서 경찰을 불러 문 앞에 세우고 아파트에 들어가 부부 중 한쪽을 끌어내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국회는 단순한 '사람의 주거'가 아니라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핵심적인 국가기구이다. 그런 국회에 일반 형법을 기계적으로 들이대는 것은, 형법강의를 처음 들은 학생이 법체계는 무시한 채 짧은 지식으로 온 세상을 재단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치기어린 행동이다. 국회의원을 지낸 국회 사무총장이라는 자가 그런 행동을 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법을 지키는 것은 법치주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법집행이 항상 합법인 것은 아니다. 요건도 갖추지 못하고 상식도 무시하고 체계에도 맞지 않은 법집행은 법의 이름을 내건 '폭력'일 따름이다.
국회는 대의기관이다. 국민들이 직접 국정을 논의하기 어려우므로 국회의원을 대리인으로 선출해서 대신 논의하게 하는 것이다. 그 논의는 최종적으로는 다수결에 의해 종결되어야 하지만, 그 이전에 반드시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논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능한 한 많고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그 과정을 말살하는 다수결과 법의 왜곡은 곧 국회의 부정에 다름 아니다.
대신 논의를 해주어야 할 국회가 논의를 하지 못할 때, 국민들은 거리로 나가 직접 논의를 할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 시대의 거리의 정치, 4·19와 '부마'와 6·10은 국회가 제 몫을 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생업에 전념해야 할 국민들을 또다시 거리로 내몰아서야 되겠는가? 국회라도 제자리를 지켜라.
김창록(경북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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