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악보 제일주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90세를 일기로 1957년 1월 16일 뉴욕 자택에서 사망했다.
토스카니니가 추구한 음악세계는 '음의 객관화'였다. 그는 연주자 개인의 감정에 따른 군더더기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음과 템포와 리듬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오직 작곡가의 의도에만 충실했다. 이로써 그의 지휘는 음악을 객관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 같은 지휘를 고집하는 그를 '군악대장'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리허설 때 단원들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휘봉을 꺾거나 악보를 찢는 등 과격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지휘봉이 쉽게 부러지지 않으면 손수건이나 윗옷을 찢기도 했다. 틀린 음이나 어설픈 음을 발견하면 '노! 노!'라고 불같이 호령을 토해냈고, 단원들은 그런 그를 '토스카노노'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늘 쉬어 있었다. 공연을 보러 온 무솔리니가 토스카니니에게 파시스트 찬가를 요청하자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 결국 무솔리니가 고집을 굽혔다는 일화도 있다.
조두진 문화부 차장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단독] 국민의힘, '보수의 심장' 대구서 장외투쟁 첫 시작하나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정동영 "'탈북민' 명칭변경 검토…어감 나빠 탈북민들도 싫어해"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