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개 핥은 뚝배기

'개 핥은 뚝배기'란 말이 있다. 옛날 할머니들이 이웃집 사위나 먼 척 사위들에게 더러 하던 말이었다. 인물이 훤한 남자에게 주는 칭찬인데 어쩐지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생긴 것은 괜찮은 듯한데 어딘가 밉살맞고 뻔뻔한 사람이라서 잘생긴 인물마저 사정없이 깎아내리는 박절함이 느껴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표현이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 말이 있다. '인물이 갯밭 무처럼 훤하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속 시원하게 칭찬하는 말이다. 갯밭이란 강변모래밭이다. 강물이 드나드는 맑은 모래밭에서 자란 무는 금방 뽑아도 씻은 것처럼 하얀 모양에, 뿌리가 굵고 물도 많고 달아서 맛까지 최고였다. 그러니 갯밭 무같이 훤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썩 괜찮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갯밭 무보다 한 수 위의 찬사를 받는 사람은 또 따로 있었다. '옥골선풍'(玉骨仙風)이다. 살빛이 옥처럼 희고 신선 같은 풍채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성품마저 고결한 사람에게 준 표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옥골선풍은 아무나 넘볼 수 있는 칭찬이 아니었다. 평민은 아무리 잘나고 마음이 따뜻한 남자라도 옥골선풍은 가당찮았다. 다만 큰 갓 쓴 도련님들을 위한 상징어였을 뿐이다.

개 핥은 뚝배기나 갯밭 무와 옥골선풍이라는 말은 모두 어르신들이 젊은이에게 주는 칭찬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세대들은 젊은 남자를 두고 어르신이 만나보고 대신 표현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그 남자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연령의 여성이 직접 만나고 또 그 소감을 바로 말한다. 요즘 세대는 잘생긴 남자를 보면 와 '죽인다!'로 표현한다. 자살형인 '죽겠다'가 아니라 타살형인 '죽인다'이다. 사실 죽인다로 표현된 남자나 여자는 상대가 멋에 홀려 죽을 만큼 일부러 멋을 부린 사람이다. 그러니 갯밭 무나 옥골선풍처럼 자연스럽게 내면의 품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죽인다'로 표현된 사람은 개 핥은 뚝배기와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차라리 개 핥은 뚝배기가 나은지도 모른다. 뚝배기는 모습만 보이고 누구를 해치는 행동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시대의 생활을 반영한다고 했다. 우리는, 실업난과 생활고뿐만 아니라 멋진 사람으로부터도 죽임을 당하는 참으로 끔찍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언어가 증명해주고 있다.

신복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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