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민족 다문화 사회] 아이들 잘 되려면…

▲ 노력하는 부모가 있어야 행복한 가정이 된다. 군위의 이원길·산티아고 라켈 마틴씨 부부와 아이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노력하는 부모가 있어야 행복한 가정이 된다. 군위의 이원길·산티아고 라켈 마틴씨 부부와 아이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경북 칠곡의 A초교에 다니는 예빈(가명·11·여)이는 중국인 엄마를 둔 다문화가정 2세다. 그러나 여느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의기소침함은 찾아 볼 수 없다. 예빈이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중국어를 곧잘 하는 예빈이를 친구들은 신기해하고, 부러워한다. 예빈이는 지난해 5월 엄마가 강사로 나가는 학교 중국어 교실에서 통역을 맡았다. 수업을 들으러 온 친구 엄마들은 똑부러진 예빈이를 보고 자신의 아이와 친구가 돼 달라고 했다.

예빈이는 방학동안 중국 알기에 열심이다. 개학하면 친구들에게 중국의 역사와 풍습을 들려줄 생각이다. 예빈이는 한국과 중국의 두 나라 말과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다문화가정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사례다. 그러나 많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여전히 어눌한 말투와 학습부진에 뒤처지고, 피부색으로 갈라놓은 편견에 정체성마저 혼란을 겪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가정에서부터 자연스레 다국 언어와 문화를 접하는 다문화가정 자녀들. 그들이 세계화 감각을 지닌 인재로 커 갈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관심에 달려 있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우리가 다문화가정 2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얼마 전 일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속속 제도권 교육에 편입되고 그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보다 언어나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대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정부는 올해부터 2012년까지 700억원을 들여, 다문화가정 학생의 언어 및 학습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시·도 교육청별로 다문화 이해 과정을 개설하고, 교사들로 하여금 직무연수를 받도록 했다. 한국어반, 방과후 학교 운영, 문화체험활동, 멘토링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 초교 교사는 "학교에서 진행되는 다문화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교육혜택을 받지 못한 이 아이들이 이대로 컸을 때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많다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단순 언어교육에 치우쳐 큰 효과가 없다"고 했다.

더욱이 지역별, 학교별, 부모의 경제적 능력, 결혼이주자의 출신국별 자녀의 교육실태가 천차만별이지만 구체적인 정보수집이나 전국적 차원의 실태 분석도 미비해 통합적인 교육을 이뤄낼 수 있을지 꼬리표를 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이런 교육지원이 학기 중에만 집중돼 정작 방학이 되면, 무관심 상태에 놓이게 돼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북대 정정희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교과서에는 여전히 유럽 등 선진국 소개뿐이고, 정작 한국의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문화와 삶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편중이 심하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다문화가정 자녀의 교육과 더 나아가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재로 키울 방법을 찾으려는 정부나 지자체의 노력은 큰 의미가 있다. 대구시교육청과 경북도교육청은 올해 각각 2개와 22개의 다문화정책연구학교를 지정해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교육방안 찾기에 나서고 있다.

경북도교육청 권혁직 장학사는 "다문화가정 자녀를 단순히 한국인으로 동화시키려는 데서 벗어나 그들이 지닌 이중 문화와 언어 등을 소중한 가치로 여길 수 있도록 자녀 및 부모 교육을 강화하고 더불어 성숙한 다문화 기반을 다지기 위한 또래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가정부터 시작, 당당하게 키우자

19일 오후 4시쯤 경북 군위군 군위읍 동부리 이원길(46), 산티아고 라켈 마틴(36·필리핀)씨 부부의 집. 3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딸 유진(9)이와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아들 창민(7)이가 아빠 엄마 앞에서 유행가의 리듬에 율동을 선보였다. 구김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남매는 엄마에게 배운 영어실력에 친구 사귐도 스스럼없다 보니 인기가 많다.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아빠 원길씨의 외국인 부인에 대한 배려와 한국생활에 적극적인 엄마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2000년 원길씨와 결혼해 한국에 온 라켈씨 역시 여느 결혼이주자처럼 처음에는 한국생활이 힘들었다. 서먹서먹한 시부모님과의 관계, 추운 날씨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라켈씨는 시어머니를 졸라 김치며 된장 담그는 것을 배웠다. 모르는 것은 무조건 남편에게 묻고 상의했다. 한국 아줌마가 되기 위해 한국말 배우기를 열심히 했고, 유진이를 가졌을 때는 책을 놓지 않고 공부하면서 태교를 했다. 서툰 한국어 발음이었지만, 아이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했다. 말이 안되면 그림을 보여주고 표현이 익숙하지 않을 땐 비슷한 내용의 TV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

"유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어요. 피부색이 다르다고 아이들이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놀렸나봐요. 울고 있는 아이에게 '너는 아프리카사람이 아니다. 너의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해줬죠."

라켈씨는 지난해부터 군위의 효령·우보·의흥 초등학교 방과후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경북도 공무원교육원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라켈씨는 간간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익히게 하지만, 본격적으로 가르치진 않는다. "아직은 한글 어휘나 표현력을 더 배워야 해요. 한국말도 잘 못하면서 영어를 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라켈씨의 자녀교육은 확고하고도 당당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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