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罷官과 KKK 인사

최근 MB개각 놓고 정치권 설전/인사를 政爭 수단 삼아선 안돼

중국 명나라 때 청백리 海瑞(해서)는 인사를 둘러싼 고금의 세태를 경계하는 본보기로 곧잘 회자되는 인물이다. 그는 30여 년간 벼슬을 살면서 수없이 파면당하거나 스스로 물러나기를 반복해 罷官(파관)으로도 유명했다. 놀라운 일은 그가 파직되고 복직을 되풀이하는 동안 직위는 갈수록 높아졌다는 점이다. 작가 이중톈은 '품인록'에서 "백성들이 좋아한 관리였으나 앞뒤가 꽉 막혀 늘 관례를 깨고 분란을 일으키는 인물이었다"고 그를 품평했다. 조정 고관들도 그의 고지식함 때문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피해 다녔다고 할 정도니 한마디로 그는 관원들 눈에는 달갑지 않은 별종이었다. 관리의 본분과 원칙에 충실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모함은 늘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직으로 밀리거나 옷을 벗기를 밥 먹듯 해야 했다. 흔히 모두의 입맛에 맞는 인사라야 잘된 인사라고 한다. 하지만 해서의 사례에서 보듯 아무도 그런 인사를 장담할 수 없다.

신문 지면에 고위 공직자 프로필과 관공서'기업의 인사 알림이 넘친다. 이명박 정부도 집권 2년차에 민심과 공직 기강을 일신하겠다며 개각을 단행했다. 고금을 막론하고 인사에는 늘 소란이 뒤따른다. 하마평에 술렁이고 인물평으로 시끄럽기 때문이다. 인물에 대한 품평은 동양의 오랜 전통이라지만 요즘 정가에서는 인물보다 인사평이 앞지른다. 인사에 숨은 의도를 파헤치고 정국에 미칠 영향을 따지기 때문이다. 말꼬리에 늘 "인사가 만사야"라고 덧붙이면서 일단 비판부터 하고 본다.

틈만 나면 바꾸라고 야단쳐 놓고 정작 바꾸면 또 왜 그런 인사를 했느냐며 욕하는 게 세상이다. 말 따박따박하기로 소문난 한 야당 대변인은 "경북'고려대'공안통을 배치한 KKK 인사"라는 작명도 모자라 '맹종 내각' '돌격 내각' 하며 핏대를 세운다. 여당은 여당대로 청와대를 향해 속을 끓인다. 인물평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투다. 인사라는 것 그 자체에 맞대거리를 해대야 제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는 탓이다. 그게 정치밥 오래 먹은 사람들의 눈치요 경륜이다. 그래서 온갖 험구를 동원한다. 인물이 아니라 인사행위 자체에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그게 요즘 인사의 속성이라면 할 말 없다.

무분별한 인사와 그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과민반응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구의 모 대학 총장의 사연을 듣고 보니 더욱 그렇다. 임기 만료를 앞둔 그는 "새 총장의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 임기 1개월을 반납한다"며 오늘 서둘러 퇴임식을 갖고 평교수로 돌아갔다. 선거 결과라고는 하지만 후임자에 대한 속 깊은 배려가 아름답다. 정권 바뀌어도 "임기가 남았는데"라며 버티다 밀려나는 것과 비교하면 말이다. 물론 밀려난 사람도 자리에 미련이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원칙을 고집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일 게다.

'맹견 주의'보다 '맹견 없음'이라는 푯말을 더 의심하고 눈초리를 바짝 세우는 게 요즘 세태다. 세상을 삐딱하게 봐야 제대로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인사는 비전이다. 인물을 보고 미래를 그려야 한다. 인사 행위에 신경 쓰다 인물을 잊어버리면 제2, 제3의 해서가 나오지 말라는 법 없다. 민심을 거스르는 '반란 인사'도 경계해야 하지만 인사 머리부터 고래고래 고함 지르지 말아야 할 때도 됐다.

물론 인사가 잘못돼 탈 나는 경우도 많다. 퇴진한 강만수 장관이나 부하직원 인사가 꼬이면서 화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도는 한상률 국세청장의 예가 그렇다. 인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아량이 좁은 탓에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 인사를 부엌칼에 비유하면 그리 분통을 내지 않아도 될 일이다. 예리하게 썰 일이 있고 칼등으로 으깨는 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사가 천금처럼 막중하다지만 과정일 뿐 결코 완성이 아님을 눈여겨보자. 인사를 권력의 부산물이나 정쟁의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인사는 萬事(만사)가 아니라 輓詞(만사)가 되기 십상이다.

徐琮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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