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되면 학교마다 졸업식을 합니다. 올해는 경제가 너무 어려워서 졸업생들의 마음이 매우 어두울 듯합니다. 물론 초중등학생에게는 경제의 어려움이 피부로 크게 다가오지는 않겠지만 어두운 사회 분위기로 인해서 희망을 발견하기가 무척 어려운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싶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졸업 시즌만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습니다. 학교에서 꽃다발을 많이 볼 수 있는 날이며 학부모님이나 축하객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날입니다. 너무 심한 축하를 하는 바람에 교복을 찢는다든지 옷에 밀가루를 뿌리는 경우까지 있으니 말입니다.
졸업의 의미를 되새길 때 늘 음미하는 시가 만해의 '님의 침묵'이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는 만해의 시구를 떠올리며 졸업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졸업 앨범의 편집후기에도 많이 들어가는 시구이기도 해서 정말 오래 기억에 남는 구절이었으며, 학창시절에 정말 좋아했던 구절이었습니다.
졸업만큼 아쉬운 것은 없습니다. 졸업은 3년 혹은 6년간 함께했던 모든 것을 이별하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선생님, 정든 교정이며 나쁜 추억까지도 이별을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졸업을 슬픈 날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졸업만큼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길을 향해서 떠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생들의 졸업식 풍경은 왁자지껄하고 기쁨이 가득하지만 지금 40, 50대만 해도 졸업식은 무척 슬픈 날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회고사와 재학생의 송사와 졸업생의 답사에 이어 슬픔이 고조되기 시작하고 졸업의 노래를 부르면서 "잘 가시오, 잘 있으오." 하는 대목이 오면 대부분의 학생은 목이 메게 됩니다.
그러나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를 부르다 보면 왠지 가슴 한쪽이 뿌듯하게 됩니다. 아마 초라한 현재 모습에서 언젠가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앞에서 끌어주는 존재가 돼야겠다는 다짐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졸업의 의미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졸업은 영원히 교정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돌아와서 앞에서 끌어줄 날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김윤성 시인의 '개화'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나는 한 번도 꽃 피는 순간의 그 현장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꽃은/ 활짝 피어 있었다./ 항상 뒤늦게, 어김없이 피어 있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듯/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익은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처럼/ 모든 이의 것이면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듯이/ 버젓이 우리들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하늘이 공평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시처럼 누구든지 꽃을 피울 수 있고 누구든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꽃은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바심에서 보리 순을 끌어올려서 키를 높이지만 곧 죽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빠름의 속도보다는 가끔은 느림의 미학도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호열(경상북도교육위원회 교육위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