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은 면이 해진 지도를 펼쳐 든, 두툼한 스웨터 차림에 굽 낮은 신발을 신은 도시의 탐색자, 어느 새 1주일짜리 '카르트 뮈제 모뉘망(미술관 정기 관람권)'을 손에 든 나는 파리 시민들보다 더 많아 보이는 여행객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파리 시내 70여 곳의 미술관과 박물관 등을 관람 유효기간 내로 다 돌아보려면 치밀하게 동선(動線)을 짜고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나흘째 되던 날, 나는 드디어 수첩에 메모해 둔 차례대로 피카소미술관을 찾았다. 드디어 청색과 장밋빛, 입체주의 시대의 피카소를 마음껏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마레 지구의 대저택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미술관의 검은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많은 이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덮쳐오는 불안감을 누르고 다가간 철문 앞에는 다음 달 중순까지 내부 수리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맥이 탁 풀려 한참을 몇몇 다른 이들처럼 멍하니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파리에서 시행착오를 거치고 2주일쯤 지났을 때 문창돈(49)씨를 만났다. 14구에 위치한, 파리 문화성에서 제공해 준 아담한 집과 주차장이 딸린 작업실에서였다. "파리시 문화성에서 아틀리에를 작가들에게 제공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운 좋게 발탁되어 2004년 입주했습니다. 가족들의 숫자에 따라 크기가 다른데 저희 네 식구가 생활하고 작업실로 사용하기엔 시내에서 이만한 데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터라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곳 14구는 과거부터 많은 작가들의 활동지였고, 천장이 특별히 높은 조각가 전용 아틀리에로 파리에선 유일합니다."
예술의 도시다운 문화 정책이라 아틀리에에 대해 계속 물었다. "연립주택 형태의 이 아틀리에 분양정책은 프랑스 작가들뿐만 아니라 이란, 이탈리아, 칠레 등 전 세계 여러 작가들에게도 기회가 제공됩니다. 또한 입주 작가들에겐 무기한으로 살 수 있게 해주어, 주거지에 대한 걱정 없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게 배려를 해 줍니다. 자국민만을 위한 문화 정책이 아니어서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문화 예술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역사적 철학적 배경이 두터운 문화적 구조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영남대학교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프랑스로 건너왔다고 했다. 1970년대 활발했던 대구의 현대 미술 현장을 이야기하며, 숙부인 고(故) 문곤 전 대구예총회장과 친척 누나인 박남희 경북대 교수를 추억했다. 파리에는 대학 후배이자 부인인 권정애씨와 현재 영화배우로, 한국과 일본에서 가수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인 큰아들 문산, 그리고 미술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면서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문주를 소개했다. 부인은 아쉽게도 현재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루와 끌, 그리고 용접기까지 놓인 작업실에는 마치 잉카의 나스카 문양과 흡사한 우주적인 이미지의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걸려 있거나 작업대에 얹혀 있었다. 작품에 대한 소개와 지향하는 패러다임에 대해 물었다.
"우주 공간에 대한 작업입니다. 빅뱅과 함께한 순간의 광활한 우주, 시간을 마셔버린 그 공간과 정신의 교류, 운명이라 할 순 없지만 운명적인 것이라 말할 수밖에 또 없는… 존재하는 유·무형의 모든 구조를 재구성하여 21세기 새로운 별들의 배열을 제 작품으로 형상화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척 크게 들리겠지만 거시와 미시는 서로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다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이 우주 공간은 내가 어린 시절 대구에서 밤하늘을 보며 낭만적인 상상과 꿈을 꾸었던 그런 기억들과 아주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그 기억의 실체를 찾아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에둘러 말하자면 길가의 풀 한 포기와 인도양의 청새치가 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는 뉴턴의 사과와 세잔의 사과가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질과 정신의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본질적인 그 무엇을 찾고 싶다고도 했다. 작업실에서 한 블록 떨어진 단골 카페에서 맥주를 몇 잔 마시며 말을 이어나갔다. "미국의 나사(NASA)와 프랑스 우주항공국의 전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담당자들과 접촉 중인데요. 가능하다면 우리나라 우주항공 관련 전시장에서도 전시를 해보고 싶습니다." 어떤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다.
"1992년 초겨울 어느 세 번째 금요일, 파리에 와서 4년간 제작한, 100여점의 정말 피 같은 작품들을 모두 다 버렸습니다. 11월인지 12월인지 모르겠지만 세 번째 금요일임을 기억하는 것은, 당시 작업실이 있던 파리 남쪽 근교 그리니라는 작은 시의 세 번째 금요일이 가구나 소파 같은 큰 쓰레기 버리는 날이었기 때문이지요. 몇 년에 걸쳐 힘들게 시도한 종이찰흙으로 만든 작품들이었는데요. 손에 습진도 생기고, 온 집안에 곰팡이 냄새까지 풍겨가며 힘들게 만든 작품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것이 아니다 싶었지요. 쓰레기 차를 기다리면서(혹시 내 마음에도 안 드는 것을 남들이 가져갈까봐…) 우두커니 서서 가랑비에 젖어 녹아드는 작품들을 보는 것은 참으로 슬펐어요. 하지만 그 충격 탓인지 모든 걸 비우고 새로운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요."
그는 현재 파리 소나무 작가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08년 처음으로 소나무 작가상을 제정하여 선정된 젊은 작가에게 협회에서 개인전을 열어 주기도 했다. "파리에 온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하루하루가 내겐 새로운 날입니다. 숙부(고 문곤 전 대구예총회장)께서 생전에 파리에서 김창열 선생님과 만나 찍은 한 장의 사진이 던져준 감동과, 박남희 누님의 영향으로 파리에 오게 되었지요. 처음엔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독일에의 정착과 교육자의 길 등에서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고민들이 해소되고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현대 미술이나 중국 등에서 유행하는 신조류와는 다른 이곳의 미술 경향이 제게 맞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그리고 자본주의에 좀 덜 종속된 듯한, 초현대적 구조 혹은 실시간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한국에서 본다면 조금은 느슨한 그런 느낌이 드는 파리의 풍토가 저는 너무 좋습니다. 무한경쟁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있는 구조적인 악(惡)에 대항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하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카페에서 우리는 새 맥주를 시켰다. 금발의 말라깽이 처녀가 감질나게 한 잔씩 가져다주는 맥주에선 기포가 돋았고, 퇴근 무렵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담소를 나누는 파리 사람들이 카페의 빈자리를 차츰 채우고 있었다. "모든 이의 DNA가 다르듯 저마다의 잠재의식 속에 절경(絶景)이 숨어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스스로의 그런 가치를 존중하며 땀을 흘리고, 타자와 나의 다름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가 획일적인 사회 구조가 불러오는 맹목성을 비로소 이겨냈을 때, 자신이 추구한 본질적인 세계가 풍성하게 구축되는 것 아닐까요." 파리에서 전문가로 잘 살기 위한 조언을 구하는 내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박미영 시인·작가 콜로퀴엄 사무국장
◆ 약력
1960년 대구 출생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1989-도불
1989~1992 파리국립미술학교 수학(석조, 목조)
1992~1993 파리 17공방(판화)
1985~1991 프로젝트 핵
1992~1998 프로젝트 COSMOS·혼돈
1999~2003 프로젝트 COSMOS·DNA
2004~프로젝트 COSMOS-운명적인 것에 관하여
1989~2009 우주에 관한 프로젝트로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작품 활동 중
2004-파리시 문화성 제공 아뜰리에 입주
2007-현재 소나무 작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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