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착각의 시작은?…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여자 아이가 울먹이며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저 애가 나를 개똥 같다고 했어요."

엄마는 미소 띤 얼굴, 다정한 목소리로 답한다.

"그건 저 애가 널 좋아한다는 말이다."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의 고무줄을 끊으면 그렇게 말했다. 남자의 거친 태도를 여자들은 그렇게 위로했다. 좋아하니까 오히려 심드렁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여자들의 착각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흔히 새로 만난 남자가 연락을 하지 않을 때 '바쁘거나, 연락처를 잃어버렸거나, 너무 소심해서'라고 위안하지만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오지 않는 남자는 마음에 없다는 거야. 남자는 꽂히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연락하는 법이거든."

연애 경험이 많은 알렉스가 순진한 지지에게 들려주는 충고다. 여기까지는 영화의 제목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여자들이 알고 싶은 '남자의 마음' 혹은 '연애 지침서'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살이의 선택과 실수, 그리고 어쩌지 못할 무엇'에 관한 것이다.

영화 제목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봄바람이 부는 데도 갈 데 없는 여자, 남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여자, 더 많은 남자의 관심을 끌고 싶은 여자를 극장에 불러 앉히기 위한 전략처럼 보인다.

영화는 미국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20, 30대 다섯 여성의 사랑과 오해, 거기에서 비롯된 생활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남자(벤 역·브래들리 쿠퍼)는 확신 없이 떠밀려 결혼했고, 어떤 남자(닐 역·벤 애플렉)는 오래 사귀고도 결혼하지 않았다. 떠밀려 결혼한 벤은 한심한 남자고, 오래 사귀고도 결혼하지 않는 닐은 이상한 남자 취급을 받는다. (평범한 우리들처럼 엑스트라로 출연한 많은 남녀들에게 결혼은 이도저도 아닌 일상일 뿐이다. 그들은 결혼생활 내내 먹고 마시고, TV를 보고 식료품을 사고, 잠자리를 같이할 뿐이다.)

여자 주인공들은 결혼에 목숨 건다. 일단 사귀기 시작하면 결혼부터 생각한다. 지지(지니퍼 굿윈)와 메리(드류 베리모어)는 사랑을 원하고 진정한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닐과 7년을 사귄 베쓰(제니퍼 애니스톤)의 소망도 닐과 결혼하는 것이다. 제나인(제니퍼 코넬리) 역시 사랑은 곧 결혼이라고 믿었고, 벤과 결혼했지만 불행한 생활 끝에 이혼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안나(스칼렛 요한슨)는 유부남과 잠자리를 꺼리지 않는다. 끌리는 마음을 숨기지 않으며, 그가 심드렁해지면 다른 남자에게 냉큼 달려갈 줄도 안다. 남자의 청혼을 받는 것이 여자의 꿈임을 인정하지만, 청혼 받고 거절할 줄도 안다. 대궐 같은 집이 옵션으로 달려 있는데도 말이다.

영화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거나, 어느 쪽이 행복하거나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행·불행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결혼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결혼 상태에 있거나 이혼하거나 간에, 그것이 남자거나 여자거나 간에 모두 불행하고 행복하다.

영화는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뒤돌아 볼 것 없다'고 말한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 희망을 잃지 말라고 덧붙인다.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스크린 밖의 우리에게는 주의할 점이 있다. 세심한 관객이라면 눈치채겠지만 이 영화에는 '자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7년 동거한 쌍도, 오래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쌍도, 사시장철 상대를 바꾸며 연애하는 남녀에게도 자녀가 없다. 이 영화가 연애와 사랑, 결혼과 생활을 이야기하지만 스크린 밖의 우리가 마주선 삶과 다른 점이다.

책임을 아는 당신이 어떤 선택이든 주저없이 하고, 뒤돌아보지 않으려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물로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스타일' 류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더 흥미롭겠다.

▷미국/129분/12일 개봉/감독: 켄 콰피스/국내 15세 관람가/일반 7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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