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생각] 넘침과 모자람

화장대 위를 말끔하게 정리정돈하기로 며칠 전부터 생각해 왔다. 우선 조그마한 용기들을 넣을 수 있는 미니서랍장을 사기로 했다. 칸칸마다 용도별로 구분해 넣어두면 쓰기도 편리할뿐더러 널브러져 있는 화장품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겠는가. 얼마 전 대형소매점에서 높이 19㎝, 넓이 10㎝의 플라스틱 서랍장을 구입했다. 이 정도 크기라면 화장대 바닥과 수납공간 사이에 끼워 넣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공간 활용과 편리함, 미뤘던 일을 하는 데 신명까지 났다.

'타-악'하고 부딪히는 소리. 수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눈으로 어림잡아 3㎜ 높이 때문에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높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돼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장치도 없다. 서랍장 위치를 새로이 정했다. 처음 생각과 달라 의욕이 한풀 꺾였지만 갖가지 물건을 서랍장 안으로 차곡차곡 넣는 일에 몰두했다. 섀도, 파우더, 분첩, 루주가 서랍 공간으로 들어간다. 서랍에 들어갔다고 해서 제자리로 자리 잡는 건 아니다. 넣었다가 다시 빼내는 일이 잦았다. 처음 그 자리가 맞다 싶다가 다른 물건 때문에 교체되기도 한다. 넓이와 높이, 길이에 따라 물건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을 보며 필자의 과거가 떠올랐다.

필자는 20세 때 여군이 되고 싶어 병무청에다 질의를 했다. 자격요건에 충족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답변서를 보는 순간 꿈을 접어야했다. 1㎝의 모자람. 키가 걸림돌이었다. 보통의 수준에도 못 미쳤으니 앞으로 삶이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직업으로 염두에 둔 여군. 만약 조건이 맞아 선택했다면 필자 삶의 모습은 지금과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당시 상실감을 오래 붙들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이유로 선택받지 못했을 때 세상살이는 고달프다. 특히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경우엔 분노와 불신이 커진다. 신체적 조건, 물질적 조건을 따질 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은 허망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차이는 있겠지만 선택의 요건은 존재한다. 사람들은 조건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넘침과 모자람으로 불안과 상실은 여전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둥글지만 각각의 집단이 요구하는 것은 사각 모서리만큼이나 매섭다. 모서리에 부딪히면 머리가 쭈뼛해진다. 모서리 때문이라고 손으로 두들겨봤자 아픔만 더할 뿐이다. 아픈 부위를 쓰다듬어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급선무다. 1㎝가 모자라서, 겨우 3㎜ 넘을 뿐인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포기한다면 삶은 지루하기만 하다. 융통성을 부린다면 어느 정도의 만족감은 얻을 수 있다. 세상사 100% 만족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앞선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고,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조금씩 선택하는 이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그래서 예전의 규율과 관습의 벽이 낮아져 새로운 선택을 한다.

졸업식이 한창이다. 한 과정을 마치고 또 새로운 길로 진입해야 한다. 길은 낯설다. 불안하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다. 조금 모자라서, 넘쳐서 내가 원한 길이 아닐지라도 당당하게 걸음을 떼야 한다. 다행히 꽃피는 춘삼월이 눈앞에 있으니 자신의 미래가 봄날처럼 올 것이라 믿어보는 것도 손해날 것은 없지 않은가.

장남희(운암고 2학년 임유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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