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야 놀자] '촛값은 정성껏' 제안제

얼마 전 갓바위에 올라갔다가 '촛값은 정성껏'이라고 붙여놓은 종이를 봤다. 정성껏 내라고 하면 다들 얼마나 낼까? 궁금했다. 기도하러 갓바위까지 올라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10원을 내고 초를 사서 기도하지는 않을 것이고 적어도 어느 정도 가격 이상의 선에서 '정성껏' 낼 것이라고 예상해 봤다.

그림은 갓바위를 오른 A와 B의 초에 대한 수요곡선을 나타내고 있다고 가정하자. A와 B는 초 한 자루를 살 때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이 다르다. 초 한 자루를 살 때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낸다면 A는 2천원을 낼 것이고, B는 500원을 낼 것이기 때문에 전체 매출은 2천500원이 된다.

이와는 다르게 촛값을 일정한 금액으로 정해 놓았다면 어떻게 될지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 촛값이 1천원으로 고정돼 있다면 A는 초 한 자루에 2천원까지 지불의사가 있었으나, 1천원만 내도 되기 때문에 1천원을 지불하고도 1천원의 소비자 잉여를 얻게 된다. 반대로 이 경우 공급자 입장에서는 1천원의 생산자 잉여를 잃게 된다. B의 경우 500원의 지불의사가 있었으나 촛값이 1천원이므로 비싸다고 생각하고 사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 전체 매출은 1천원이 되어 '촛값은 정성껏'의 경우보다 매출이 1천500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가격을 정해 놓았을 때보다 '마음대로 내라'고 하는 경우가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갓바위에서 초를 파는 것은 불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악착같이 돈을 벌겠다는 뜻으로 '촛값은 정성껏'이라는 방침을 고수하는 일은 전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물건의 가격을 정해놓지 않고 '마음대로 내라'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뉴욕 맨해튼에서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뉴욕의 자랑인 뮤지엄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갓바위의 '촛값은 정성껏'처럼 기부금 입장이 가능하다. 뮤지엄 티켓 판매대 앞에 '제안'(suggested) 혹은 '추천'(recommend) 기부금이라고 쓰여 있거나 '원하는 대로 내세요'(PWYW·pay what you wish)가 적혀 있다면, 형편대로 내고 입장할 수 있다. 자연사 박물관은 공식 입장료가 성인의 경우는 15달러 정도이지만 '제안제'(suggested general admission)이므로 마음대로 내고 들어가도 무방하다. 미국 최대의 박물관인 메트로폴리탄뮤지엄도 형편대로 내면 입장이 가능하다. 이런 기부금 전략은 정액제 티켓보다 전체 매출이 커져야 당연하다. 그렇지만 애석한 것은 100달러를 내고 관람하는 사람들보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1달러를 내고 관람하는 관광객이 더 많다는 사실이 이 이론을 불완전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옆에서 입장료로 당당하게 50센트를 내는 사람을 보면 1달러도 너무 많이 낸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박경원(대구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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