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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醫窓)]착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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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가 줄기차게 번져가고 있다. 언뜻 '원앙소리'로 잘못 알아들었음을 깨닫고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과히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미소를 짓게 된다. 기실 말 없는 영감님과 말 못하는 늙은 소 사이의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원앙가'가 아니던가. 이심전심으로 이어지는 두 남정네와 사랑싸움을 벌이고 있는 할멈의 끝없는 신세타령, 그 '원망가'조차 새록새록 정겹기만 하다. "라디오도 고물, 영감도 고물!"이라는 다그침은 할멈도 늙은 소도 결국 같은 배를 타고서, 산절로 수절로 산수 간에 절로 늙어가는 반려자라는 하소연이리라.

"내가 이 소랑 같이 죽을 거라오"라는 영감님의 절절한 바람도 뒤로하고 늙은 소는 먼저 떠나갔다. 참 멀고도 힘든 길을 함께 걸었다. 조금이라도 가파른 길을 만나면 할머니가 먼저 달구지에서 내렸고, 힘겨운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예 할아버지도 지친 걸음으로 함께하였다. 야위고 뒤틀려 버린 다리를 끌고서 꼴을 베러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눈물겨운 곡예도, 밤잠을 설쳐가며 뭔 보약이라도 달이듯이 여물과 쇠죽을 쑤는 것도 늘 그렇게 함께 감당해야 할 일상사일 뿐이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비로소 간절하듯이, 함께한 삶이 있었기에 더더욱 함께하지 못하는 죽음이 애절한 것이다. "에이 씨, 안 돼. 안 돼."라는 노인의 마지막 절규에 '그렁거리는' 눈물로 답을 하는 늙은 소의 눈빛은 안타깝기만 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나 고통만이 아니라, 혼자 남은 노인을 두고서 먼저 떠나게 되어 자꾸만 미안하다는 듯이. 화사한 꽃상여나 거창한 만장의 행렬이 없어도 양지 바른 언덕에 묻힌 늙은 소의 죽음은 지극히 넉넉하다. 평온한 삶 뒤에야 비로소 죽음의 평화도 깃드는 법일 테니 말이다. 사후의 호들갑으로 남은 자들의 회한은 조금이나마 덮어질지 몰라도, 떠나는 이의 피눈물 어린 눈까지 온전히 감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할아버지 손에 홀로 남겨진 워낭에서 문득 산사에 내걸린 풍경소리가 묻어 나온다. 방울 안에 매달린 작은 물고기 모양의 금속판의 떨림으로 전해지는 맑은 소리. 잠잘 때도 결코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언제나 깨어있어 스스로의 삶을 되살피라는 매운 소리이기도 하다. 착한 삶을 부지런히 지어야 비로소 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단다. 온전한 죽음을 위해서라도 먼저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팥을 심어 놓고서 마음만 콩밭에서 분주하거나, 콩 내어 놓으라고 어깃장을 부리지는 말라는 죽비소리인 것이다.

송광익(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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