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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백두를 가다] 임청각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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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이다. 일제가 놓은 철로가 아직도 임청각의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다.
▲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이다. 일제가 놓은 철로가 아직도 임청각의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다.

안동역에서 중앙선 철로를 따라 10분정도 걸으면 철길 바로 건너 칸칸의 방들이 늘어선 집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철길이 마당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고, 철길의 위압에 집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임청각은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대변하고 있다. 임청각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큰 기둥인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이다. 석주 선생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당시 독립운동 진영이 좌우익으로 갈려 대립하고 있을 때 극한의 대립을 봉합하고, 초대 상해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분(국무령)이다. 석주는 당시 안동 최고 부자 중 한 분이었고, 전 재산을 털어 오로지 독립운동에 헌신해온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말하면 김구, 김좌진보다 어찌보면 더 빛나는 삶을 살다간 분이다. 석주 선생과 가문의 독립운동은 만주로 진출하는 일본군의 군수물자의 우송로가 된 중앙선 철로에 의해 파괴됐다.

권두현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사무처장은 "석주 종가의 위엄을 과시하는 루가 파괴되고, 그 자리를 일본침략의 상징물인 기차가 광폭하게 달리는 사실은 일제의 침략적 충격을 잘 말해주고 있다"며 "비유컨대 경복궁을 가로막아 총독부 건물이 들어선 것과 다를바 없다"고 설명했다.

임청각의 이러한 아픔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기차가 임청각을 위압한 채 광폭하게 달리고 있고, 더욱이 석주 선생 이후 임청각 종가 주인들도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권 처장은 "임청각 종부는 혼자 몸이 되어 어렵게 가계를 이어가고 있고, 집이 문화재만 아니었어도 하숙생을 받아 생계에 보탬이 됐을 걸하는 이야기도 했다"고 전했다.

임청각이 앞으로도 철로의 위압에 짓눌러 살아가야 할까?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헌신한 임청각 가문에 대해 국가차원의 지원도 벌써 있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일행의 가슴을 짓눌러왔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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