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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의 시와 함께] 「고승」/ 고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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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낭 속에 있는 정자는 하나도 사람이 되지 않았다

그 후 당신의 씨들은 한 번도 몸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이 세상에 나타나 이목구비를 오장육부를 가진 적이 없다

이 말뜻은 한 번도 당신이 다른 사람이 된 적 없다는 뜻

당신 이외의 다른 생과 죽음을 절대 얻지 않았다는 뜻 그래서

당신 몸 속에서 당신 벌레가 모두 금강이 돼버렸다는 뜻이오

출가자의 수양을 이토록 단단한 금강문자로 열거한 시가 있었던가. 하지만 그 금강문자에 받쳐진 번뇌와 허무의 냄새는 지울 수 없다. 인간의 냄새를 완강하게 가리고 버린 금강이 기실 인간의 육체를 숨긴 것이라는 언술에 이르면 금강이란 슬픈 언술이다. 소나무 옹이 같은 강인함 속에 가둔 한없이 연약한 이 육질을 어이하랴. 신념은 시인 고형렬의 지속적인 가치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 신념의 목록에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다른 생과 죽음'을 절대 얻지 않고 초발심을 그대로 결고운 대팻날처럼 주욱 밀고 나간 80년대의 전사에게 서정성이 덧붙여져 이처럼 아름다운 목질이 드러난 시가 등장했다. 당대 현실에 대한 신념에서 이 시의 금강 세계가 비롯되었다고 말하면 사족이자 쓸데없는 첨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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