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는 삼다(三多)와 삼무(三無)가 있다.
삼다는 산과 사람, 서원이 많다는 뜻이고, 삼무는 부자와 송덕비, 성내에 거주한 향리가 없다는 뜻이다.
삼다의 하나는 산다(山多)이다. 산이 많다는 이야기다. 안동은 구릉과 나지막한 산들이 안동 땅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산과 산 사이에 들판과 마을이 형성돼 오늘의 안동을 있게 한 것이다. 다음으론 인다(人多)이다. 시민 전부를 합쳐도 20만명이 못 되는데 왜 사람이 많은 걸까? "인물의 반이 영남에 있고, 영남인물의 반이 안동에 있다"는 말이 예부터 내려올 정도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는 뜻이다. 안동에는 서원도 많다(원다·院多). 안동을 교육도시라고 일컫는데, 그 근원을 서원에서 찾는다. 조선의 유일한 교육기관은 서원과 향교였는데, 40여개의 서원이 있었을 만큼 전국에서 서원이 가장 많은 곳이 안동이다.
삼무의 경우 안동은 예로부터 만석거부(萬石巨富)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재빈도부(財貧道富·재물은 가난하나 학문은 부자다) 고을이라고도 했다. 이는 학문을 숭상하고 치부를 멀리한 선비정신이 안동사람들의 삶과 정신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안동에는 경북의 주요 마을에 있는 송덕비가 없다. 송덕비는 고을 수령이 부임해 소임을 다하고 떠난 뒤 고을 백성들이 수령의 업적을 찬양해 세워주는 비이다. 하지만 안동사람들은 조정의 명을 받은 고을의 수령이 공인으로서 선정과 소임을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이고, 소임을 잘했다고 송덕비를 세워주는 것은 나라에 대한 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경새재 제2관문에 있는 타루비가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조선 말 김수근이라는 안동부사가 선정을 베풀어 지역민들에게 칭송받았다는 내용으로 후임 부사가 세운 비이다. 비의 원문 내용은 "안동은 퇴계 선생이 감히 공적을 표방치 못하게 한 가르침을 준수하고 있어 송덕비를 세운 적도 없고 세울 수도 없다"고 적고 있어 안동에 송덕비가 없는 연유가 된다. 또 안동에는 고을의 향리가 성(城)내에 거주하지 않았다. 향리는 고을에 대대로 살면서 관청의 일을 하는 관리이다. 안동의 향리는 성내의 관청 인근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온 성밖 마을로 퇴청해 민의를 수렴한 뒤 행정에 반영하는 것이 전통이 돼 왔다는 것이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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